▒  게시물 분류 및 제목 :  여자축구의 기적, 육상 1마일의 기적과 닮았다
   ▒  글작성인 : jkyoon    작성일자 : 11-05-2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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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26일 한국이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 놀라움과 감격 또한 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육상계의 '기적의 1마일' 얘기(출처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윤정구·2010)≫)에서 어쩌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1954년까지 육상계에선 인간이 1마일(약 1.6km)을 4분 안에 뛰는 것은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그때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마(魔)의 기록'이었다. 그런데 로저 배니스터(Bannister)라는 육상 선수가 1954년 영국에서 이 기록을 깨는 파란을 일으켰다. 3분 59초 4. 배니스터는 1마일을 4등분해 4분의 1마일을 1분 안에 뛰는 연습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기적을 일으켰다.

그런데 더 큰 기적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호주의 육상선수 존 랜디가 불과 두 달 후 3분 58초로 기록을 경신한 것을 비롯, 2년간 무려 300명의 선수가 4분 벽을 넘어섰다. 수천년간 넘을 수 없었던 4분 벽을 불과 2년 만에 300명의 선수가 깬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유력한 해석은, 배니스터가 인간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조건적 훈련을 넘어서 인간 정신에 대한 조건적 훈련에 성공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인간이 가진 달리기에 대한 정신 모형(mental model) 속 가정(假定)은 1마일을 4분에 달린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배니스터가 기록을 깨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가정도 무너졌다. 배니스터 이전엔 시도조차 하지 않던 선수들이 새 가정 아래 도전을 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박세리 선수 이후 한국 여자 골퍼들이 LPGA를 석권하고 있는 것(27명이 총 88차례 우승)도 비슷한 사례다. 박 선수가 '한국 골프계 배니스터'였던 것이다.

다시 한국 여자 축구팀으로 돌아와 보자. 한국 축구의 '배니스터'적 사건은 바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였다. 여자 축구가 새로운 전기를 찾은 것도 이때였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 월드컵 잉여금을 여자 청소년 축구에 투자했다. 이번에 우승한 17세 이하 축구팀 선수들과 지난 8월 여자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20세 이하 선수들은 모두 이때부터 체계적 훈련을 받았다.

여자 선수들은 '우리도 1등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켰다. 이 같은 신념은 어린 선수들에게 자발적인 힘을 주었고, '여자 축구는 아직 멀었다'는 고정관념을 깨며 기적을 일궈냈다.

자기 키의 수십 배의 높이를 뛰어오를 수 있는 벼룩을 유리컵에 가두고 뛰게 해보자. 놀라운 것은 컵을 치워도 벼룩은 컵 높이밖에 뛰어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정신적 틀에 갇혀 벼룩의 신세가 될 것인지, 그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도약할지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배성규 기자 vegaa@chosun.com
입력 : 2010.10.02 03:22 
수정 : 2010.10.02 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