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물 분류 및 제목 :  내 인생에서의 세 분의 맨토
   ▒  글작성인 : 윤정구    작성일자 : 15-06-01 20:15
조회 : 194  

나를 이끌어주신 세 분의 맨토 선생님:

나에게는 삶의 국면국면마다 내 삶의 지표를 보여주신 맨토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인복이 넘치는 사람인 것 같다.

이분들중 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해주신 세분의 맨토선생님이 계시다. 코넬대학교 조직행동학과의 석좌교수이자 박사지도교수 Ed Lawler 선생님. 지금의 데이터 테크놀로지가 붐을 일으키기 훨씬이전부터 데이터가 이끄는 세상에 대한 사명을 가지시고 이미 오래전에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을 설립하셨던 석현호선생님, 한국 뇌연구의 지평을 여신 안한숙선생님이시다. 75세의 연세에도 제자보다 더 활발하게 연구활동 중인 Lawler 선생님으로 부터는 반짝 떳다가 사라지는 연구자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연구자의 표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훈련받았고, 석현호선생님으로부터는 경험이 주도하는 학문에서 이론의 북극성 과 같은 역할에 대해서 훈련받았다. 안한숙선생님으로부터는 기득권에 의지하지 않고 영원히 청년답게 사는 법에 대해서 배윘다.

어제 안한숙선생님을 모시고 오랜만에 오봇한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내년이면 팔순이신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뇌 생리심리학자 1세대이시다. 625직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가셔서 아이오와에서 뇌생리심리학을 전공하시고 뉴욕대학의대에 교수로 계시다가 아주대학에 의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초빙받아 영구귀국 하셨다. 나중에 아주대학교에 심리학과를 설립하셨다. 지금은 어떤 연구에도 다 뇌연구를 연결시키지만 선생님이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뇌연구는 사람들에게 블랙박스 속의 이야기로 연구가 아주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가 군대를 막 제대하고 처음으로 만나뵙게된 선생님은 나를 선생님이 박사학위를 받으신 아이오와로 유학가도록 강력하게 인도해주셨다. 비행비표까지 손수 끊어주셨다. 한 마디로 성장소설에나 등장 하는 아이오와 깡촌사람의 헝그리 청년정신이 내 정체성의 중심부에 자리잡도록 인도해 주신 분이다. 나의 지금까지의 경험 중 아이오와 깡촌에서 풍운의 꿈을 꾸어가며 청년기를 보낸 것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다.

1996년 한국에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렸을 때 당연히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아주대학교에 들렀고 내가 한국으로 귀국할 생각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즉석에서 당시 가장 핫한 경영대학을 이끄시던 독고윤교수님과 인터뷰를 주선해주셨고 급하게 프린트한 이력서를 보신 독고교수님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더니 만난지 4 시간여만에 전격적으로 채용을 결정해주셨다. 그당시 이런 종류의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던 아주대학교는 정말 무섭게 떠오르던 대학이었다. 내 연구업적도 작용을 했겠지만 안한숙 선생님이 추천을 했다는 사실은 아마도 보증수표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당시 아주대학교는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시골의 순박한 학생들이 많은 대학이었다. 이화여대로 떠나오기 전까지 내 정체성과 딱 들어 맞은 아주대학교에서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배워가면서 10년간 꿈같은 교수생활을 했다.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정말로 고마우신 분들이다. 이분들 중 한 분이라도 내 인생의 장면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아닌 다른 나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