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물 분류 및 제목 :  60세의 참회록 님의 침묵
   ▒  글작성인 : Administra…    작성일자 : 22-09-17 10:16
조회 : 18  

60세의 참회록
님의 침묵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다시 읽었다.  누구나 이 시를 읽으면 시에 등장하는 님은 자신과 그때의 상황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님은 연인일 것이고, 권력, 명예, 부에 빠진 사람들에게 님은 힘, 위세, 돈일 것이다. 나라를 잃은 상심에 빠진 애국자에게 님은 조국일 것이다.
나에게 님은 누구인가?
청년 시절 님은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결혼한 후 님은 연구자로서 학문적 명성이었다. 학문적 명성을 키우기 위해 밤샘도 많이하고, 연구도 많이하고, 논문도 많이 썼지만 알고보니  명성도 파랑새였다. 명성이 있는 대상을 따라잡으면 더 큰 명성을 누리는 사람이 더 많이 나타났다. 나이가 드니 체력과 총기도 떨어져 따라잡을 수 있는 발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명성이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파랑새라는 것을 알아챈 후 연구실 골방에 숨어서 한 참을 울었다. 몇 일간 심히 아팟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몇 일 심하게 아픈 이후에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잊지 못해 중년의 세월을 다른 파랑새들을 쫒아가며 허송했다. 삶이 점점 소진될무렵 우연한 기회에 젊은 시절의 삶을 돌아보는 <나이 50이 되어서 깨달은 사실들: 30세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자성록을 썼다.
==========================
나이 오십에 깨달은 사실들
==========================
1. 초년 성공은 오히려 인생의 독이 된다는 것.
2. 인생 대박은 쪽박의 지름길이라는 것.
3.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면 생각했던 것보다 인생 역전한 친구들이 많다는 것
4. 영양가만 따져 만든 인맥이 정말 영양가가 별로 없다는 것
5. 명함을 돌리면 97%의 사람은 버린다는 것
6. 일 이년이 아니라 적어도 20년은 해야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7. 40대에 하늘을 찌르던 자만심도 50대로 들어서면 급속도로 꺾인다는 것.
8.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기억이나 추억은 고무줄이 된다는 것.
9. 아무리 성과를 많이 냈어도 정년퇴직하자마자 조직은 금방 나를 잊어버린다는 것.
10. 인생에서 믿을 것은 자식이 아니라 배우자밖에 없다는 점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다 극복한 행복한 노후를 만드는 비결은 있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본다. 내가 창창한 30대의 젊은이로 돌아간다면 다음과 같이 살도록 나 자신에게 충고해 줄 것이다.
1. 기왕이면 친구들보다 늦게 성공하자. 해피엔딩 시점을 기점으로 이전의 모든 불행은 행복을 위한 전주곡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2. 대박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운이 없다면 대박은 생길 개연성이 없다. 운을 필연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오히려 쪽박이 필연이 된다.
3. 친구들과 성공을 비교하는 일은 인생의 중반이 넘어간 40 이후로 미루자. 그전에는 친구와의 비교보다는 자신의 삶에 더 매진하자.
4. 정말로 뛰어난 사람들은 영양가 있는 인맥을 따지는 사람을 장사꾼으로 취급하여 경계한다. 이들은 단기적 영양가를 넘어 장기적 운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최고의 인맥으로 생각한다.
5. 잘 포장된 명함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현해 상대에게 나를 체험하도록 하자. 나아니면 맛볼 수 없는 체험을 제공해줄 때만이 상대에게 나를 제대로 각인시키는 제대로 된 명함이 된다.
6.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장기적 안목으로 집중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더 전문가가 된다. 전문가는  삶을 길게 본 사람을 말한다.
7. 인생의 베이스캠프를 40대가 아닌 50대로 연장하자. 50이 되어서야 비로서 올라가야할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8. 나이가 들수록 단기 기억보다는 장기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단기적으로 승부하는 일에 일휘일비 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으로 좋은 결말을 낼 수 있는 삶에 매진하자.
9. 조직에 성과로 기여하는 사람을 넘어서서 문화로 족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자. 성과는 아무리 많이 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금방 잊히지만 문화적 족적은 조직의 기억을 장악한다.
10. 자식들에게 투자하는 하는 반이라도 배우자에게 투자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배우자를 인생의 진정한 파트너로 받아들이자.
===========================
50에 이르러 삶에서 성공이란 운이나 한 방이 아니라 일상의 치열한 반복을 통해 더 나은 차이를 만들어 이 차이가 자신이 만든 차이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이해했지만 삶의 공허감은 지속되었다. 공자는 50을 지천명이라고 칭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이 50이 되었어도 나에게 주어진 명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60을 넘긴 삶을 살다보니 드디어 놓치고 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추구했던 님에 대한 모든 사랑은 마음 속에 이별을 낳고 이별은 여지없이 슬픔을 길러냈다. 이 슬픔의 고통을 직면하고 이 고통을 희망의 정수리에 부어 살려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삶을 사랑했음을 깨닫았다. 부모가 물려준 머리와 건강을 날개로 삼아 파랑새가 되어 다른 파랑새를 쫓는 삶 속에서 돌봐지지 못해 초라해진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슬픔과 고통은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복권에 한번도 당첨되지 못해 평생을 맨땅에 헤딩해가며 처절하고 애절하게 살아야하는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진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진짜로 사랑해야 할 대상은 떠나간 님이 아니라 떠난 님이 마음 속에 사랑의 흔적으로 남긴 이별과 상처임을 알았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하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인 긍휼의 사랑만이 온전하게 우리를 우리답게 키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복권을 파랑새의 날개로 삼아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동안 날개를 지탱하던 밀랍이 녹아 자신이 고통스럽게 추락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60이 넘어서야 드디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의 마지막 귀절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사랑의 슬픔을 반복해가며 고통과 슬픔을 길러내는 생명을 키우는 삶을 반복한다. 어느 순간 님을 보낸 것이 아니라 파랑새를 쫓는 동안 님은 가슴 깊숙히 숨어서 울고 있었음을 이해했다. 내가 작곡한 사랑의 향기와 사랑의 전주곡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