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내재화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 행동을 통해서 자신도 행복해짐을 체험했다. 이 택시기사는 긍휼감을 가지고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솔루션을 개념화하고 이를 자신의 운전경험으로 제작해서 할머니와 자신에게 인생에서 맛볼 수 없는 값진 체험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오늘 아침에는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디자이너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비쥬얼화 해서 구체적 형태를 가진 프로토타이핑을 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탁월한 디자이너들은 프로토타이핑 능력외에 뛰어난 개념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탁월한 개념화 능력은 디자이너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공감의 능력이 아니라 궁휼감에서 시작된다. 디자이너들은 남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개념을 만들고 이 개념을 실재하는 형태로 프로토타이핑 해내고 이 가설적 프로토타이핑을 현실에 맞추어 검증해서 미적으로 완성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문제의 근원을 가장 깊은 곳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인 긍휼감에서 온다.
남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 해서 풀어가려는 행동적인 성향이 없다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문제의 본질과 가장 깊은 곳에서 만난다. 남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수준인 공감능력만으로는 뛰어난 문제풀이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감성으로 포장한 상업적 광고의 뛰어난 대상이 될 뿐이지 개념화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이끌 수 없다.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 각광받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이 고통에 대한 근원적 해결점을 제시하는 발명품이다.
내가 이번에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던진 사람도 누가 가장 높은 수준의 긍휼감을 가진 리더인가라는 기준에 의해서 였다. 대통령에게 긍휼감은 대한민국의 문제를 가장 깊은 곳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대한민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수 있고 이것을 풀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의 원형을 디자인해 낼 수 있는 안목이 있다고 믿었다.
긍휼감이 없다면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빅테이터 속으로 깊숙히 숨어버린 인간의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긍휼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4차 산업혁명도 남들의 잔치로 끝날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남들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내재화 해서 풀려는 예수의 긍휼감이 없었다면 신과 부락의 종교인 유대교를 넘어서는 기독교도 세상에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의 긍휼감이 없었다면 불교도 인간의 종교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호멧의 긍휼감이 없었다면 이스람교도 추상적인 알라 신의 개념으로 머물다 사라졌을 것이다.
인간의 고통과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맞닿아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결국 21세기의 리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