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뜬 장님 아닐까?
비전의 비밀

나는 요즈음 경영자들을 만나던지 지인을 만나던지 만남의 기쁨을 선사하는 선사하는 경우는 이분들이 높은 자기인식 수준을 보여줄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만날수록 갈증을 느끼는 경우는 자기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큰 목표로 자부심이 거대하게 팽창되어 있는 경우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인식이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좌표를 알고 있는지가 자기인식이다. 비전이 있는지 없는지의 비밀은 큰 목표를 제시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자기인식이었다. 자기자신조차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비전을 상실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진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인식이었다. 자기인식이 깊은 사람들이 지혜로운 이유는 이들의 비전 때문이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만나는 기쁨이 상당한 이유는 이들의 높고 깊은 수준의 자기인식은 상대에게도 전염되어 상대에게도 지혜의 눈을 뜨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찾고 헤메였던 지혜로운 현인들은 다 높은 자기인식을 구사하는 비전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역사적으로 추적해볼 때 자기자신도 볼 수 없는 비전을 상실한 사람들은 오만과 자만심의 화살로 자신의 눈을 찌른 사람들이다. 오만과 자만심을 뜻하는 말인 'Hybris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BC 486-465)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영어의 휴브리스 Hubris와 같은 말이다.

오만과 자만의 화살에 눈이 찔려 비전을 상실하게 되면 크고 장대한 것을 보는 것을 비전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비전을 상실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젊은 대왕인 크세르크세스 1세(BC 486~465)도 거대한 것에 집착했다. 그리스 본토를 칠 때 231만의 군사를 포함해 모두 528만명을 동원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를 치기 위해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역사를 함께 벌였다. 그리스 북부 아토스 반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판 것이다. 운하의 목적은 그리스의 성공적 침공에도 있지만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운하를 후세에 기념비로 남기고 싶은 과시욕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운하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비전을 상실하고 오만과 자만심에서 나온 과시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크세르크세스의 오만은 스스로 부풀어 올랐다. 심지어는 그의 오만은 자연현상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대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해협 앞에 이르자 그는 800척의 배를 나란히 엮어 대륙을 횡단하는 부교를 세웠다. 이때 큰 풍랑이 일어 다리를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진노한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해협에 죄를 물어 채찍 300대를 치고, 바다의 신을 결박한다는 뜻으로 족쇄를 던졌다. 그의 명령을 받은 군대가 해협을 향해 소리쳤다. “네가 나를 방해한 죄로 우리 주인께서 너에게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대왕께서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너를 건너가실 것이다.” 그의 뜻대로 그는 바다를 건넜다.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보여준 오만을 그리스인들은 ‘히브리스’(hybris)라고 불렀다. 히브리스에 찔리면 모든 사람들은 눈 뜬 장님이 된다.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상실한 것이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의 정당성만 생각하고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

히브리스에 휘둘려 장님이 되면 그때 반드시 닥쳐오는 것이 네메시스(nemesis)라는 곧 응징과 복수의 신이다. 복수의 신 네메시스는 항상 돌아와 영웅들이 뿌린 히브리스의 죄 값을 받아낸다. Hybris와 Nemesis의 관계는 절대로 인과응보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발칸반도를 파죽지세로 남하한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바다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맞붙었다. 그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옥좌를 마련하고 앉아 마치 영화를 보듯 전투를 감상했다. 그러나 한나절 만에 페르시아 해군은 그리스 삼단노선의 공격에 궤멸당한다. 장군들과 병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크세르크세스는 제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울부짖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장님이 된 자신의 눈을 탓하고 외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찔러서 실제 자신을 장님으로 만든 비극을 상상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비극적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업이나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소니나 노키아가 무너진 이유는 바로 자신이 설정한 큰 목표지점에 도달한 것을 목적지로 착각하기 시작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hybris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안 된 대표적 나라이다. 자기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 개인, 심지어는 국가가 단기적 비전을 강조하는 함정에 빠졌다. 자신을 근시안을 가진 장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기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큰 목표를 비전이라가 주장하는 회사나 국가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이 본 것은 장님의 눈으로 본 사막의 신기루였다. 자기인식이 안 된 상태에서 기업이나, 나라나, 리더가 설정한 큰 목표는 휴브리스를 키워 구성원을 장님으로 만드는 원흉이다.

교훈은 무엇인가?

부처님의 전생의 이야기를 담은 경전,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도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하였고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 조심하라’고 강조하였다.(3권, 용왕게연 龍王偈緣중). 태산 같은 자부심이 부풀러 올라 자기인식이라는 비전의 기반을 상실하면 눈뜬 장님이 된다. 손자병법에서도 자신을 알고 남을 알면 백전불패라고 규정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자기인식이 있어서 비전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면 아무리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어도 어떤 싸움도 이길 수 없다.

진짜 비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눈에 덮힌 오만과 편견과 자만의 장막을 거두고 자신에 대해서 깊은 인식을 마련하는 자기인식에서 시작한다. 깊은 자기인식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인 목적이다. 비전이란 이 자기인식을 통해 자신의 삶의 진실된 목적을 발견하고 이 목적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될 때이다. 비전의 진짜 의미는 목적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세롭게 보게 된 기회의 땅이라는 뜻이다. 진정한 비전이 있는 사람들이나 기업은 자신의 목적을 깨달아서 이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의 기회를 다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보여준 진정한 비전의 힘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비전을 가진 사람에 대한 비유는 모세에게서 나타난다. 모세는 자기인식 속에서 발견한 목적을 통해 이 목적에 정렬된 목표를 규제해가며 궁극적으로 목표가 아닌 진정한 목적지에 이르도록 바닷길을 만들어냈다. 바닷길은 치열한 자기인식을 통해 찾아낸 목적과 이 목적의 눈으로 발견한 가나안을 향한 새 길이었다.

요즈음 글로벌에서 CEO 선정기준 중 가장 중요한 기준도 자기인식이고 C 레벨에서의 모든 리더십 교육도 다 자기인식을 높이려는 교육으로 통합되고 있다. 사막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일상이 된 지금과 같은 경영상황에서 비전을 상실한 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긴다는 것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