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는 기업의 성품을 반영한다. 삼성에 오랫동안 다닌 사람은 왠지 삼성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 LG에 오랫동안 다닌 사람, SK에 오래 다닌 사람, 현대에 오랫동안 다닌 사람들이 서로 명함을 교환하지 않아도 그곳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안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 태도, 느낌 생각을 표현해주는 성격이 있듯이 기업에도 성격이 있다. 기업의 성격은 문화다. 이 기업문화에 좋은 인성과 철학적 품격이 녹아 있다면 기업은 성격을 넘어서 품성을 가진 것이다.
품성을 가진 기업에 오래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최대의 행운이다. 이런 회사에 다녔던 분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를 표한다. 이 회사를 오랫동안 다녀서 지금과 같은 괜찮은 품성을 획득하게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이다. 역으로 이런 격있는 회사에 다니지 못하고 오직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성이 떨어지는 회사에 오래 다녔다면 상상할 수 없이 기형화된 자신의 성격에 대한 섬찟한 반성이다.
어떻게 기업은 성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일까?
Schneider는 기업이 성격을 획득하는 과정을 ASA(attraction-Selection-Atrrition)이라고 명명했다.
설립자가 사업을 일궈서 사업이 잘 된다면 직원들을 더 채용해야 한다. 직원을 채용할 때 직원들의 능력도 보겠지만 암암리에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 철학과 비슷한 직원에 끌려(attraction) 이들을 채용(selection)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병철 회장은 이것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면접시 관상가까지 동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철학이나 성격이 비슷한 분신을 발견하면 당연히 능력은 좀 부족해도 채용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채용에 성공한다면 기업은 설립자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채워지게 된다. 설사 기업의 성향과는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채용되어도 이 분은 기업의 분위기가 안 맞아서 퇴사(attrition)한다. 결국 기업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본적 능력이 있거나 설립자와 분위기, 철학,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설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성격이 다르다면 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격을 죽이고 기업의 분위기에 맞춰 살 수 있어야 한다. 능력만보고 수퍼급 인재로 채용된 사람들이 결국 이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격이 완성된 성인이라하더라도 5-6년 이상 이런 분위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대부분 성격이 변화한다. 결국 기업은 특정 성격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용광로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점이 바로 기업은 많은 사람의 성격을 책임지고 있는 사회적 용광로라는 역할이다. 기업을 망하지 않게 운영하여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도 초보적 수준의 사회적 책임이지만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은 좋은 용광로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다. 기업이 좋은 철학을 구축해 구성원들에게 성격을 넘어서 성품을 단련시킬 수 있다면 기업은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사업을 일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면 철학이 들어간 용광로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번성을 누릴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에 철학을 넣어 판매할 수 없다면 아무리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도 차별성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설립자의 기업을 승계받았을 때 발생한다. 설립자는 비즈니스에 대한 능력뿐 아니라 자신의 성품과 철학을 계승해줄 수 있는 사람을 승계자로 고른다. 승계의 핵심은 비즈니스를 넘겨주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만든 기업의 성품에 녹아 있는 문화적 DNA 즉 밈(Meme)을 넘겨주는 유전행위이다.
승계받은 후계자들이 겪은 최고의 과제는 이 문화적 성품을 시대에 맞춰서 변화시키는 일이다. 선대의 문화는 설립자의 철학과 성격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이렇게 형성된 문화적 성격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서 진화하지는 못한다. 결국 구시대의 성공을 보증했던 문화와 비즈니스가 뒷다리를 잡는 장애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후계자는 시대에 맞춰 비즈니스를 공진화시키는 문제에서는 성공하지만 시대에 맞춰 문화적 Meme을 공진화시키는 문제에서 좌절하여 결국 수성에 실패한다.
우리나라에서 3세에게 승계된 모든 재벌기업들의 위기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에서라기보다는 문화적 성품을 시대에 맞춰서 공진화시키지 못한 것에서 파생한다. 이들 승계자가 해야 할 임무는 성공의 결과로 획일화된 문화에 다양성을 주입시키고 이 다양성을 기반으로 시대에 맞는 문화로 공진화시키는 일이다. 또한 기업은 성품을 만드는 사회적 용광로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좋은 철학과 좋은 성품의 문화적 용광로를 구축해 구성원들에게 좋은 성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미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좋은 미래는 좋은 철학과 좋은 성품을 현재로 가져와서 비즈니스에 이들을 끼워넣을 수 있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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