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6 06:42
[N.Learning] 삶에서 돈, 명예, 권력을 따라가는 삶 그레이하운드 경주의 비극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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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돈, 명예, 권력을 따라가는 삶
그레이하운드 경주의 비극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희곡 《오 행복한 날들》엔 50대 아내 위니와 60대 남편 윌리가 나온다. 1막에서 위니는 허리까지 모래 속에 파묻혀 있고 2막에서는 목까지 묻혀 있다. 위니는 결국 모래 속에 파묻혀 생명을 마감할 운명이다. 극중 간간히 남편이 왔다 갔다 하지만 둘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다. 모래에 파묻혀 죽어가는 와중에도 위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을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의미 없는 대사를 쏟아놓는다.
모래는 그녀가 평생을 통해 축적해놓은 재산과 명예와 욕망의 상징이다. 위니는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운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 될 거예요. 오늘은 행복했어요.” 죽는 순간까지 그녀는 주문처럼 자신에게 “오늘도 행복했어요.”라고 외치지만 그녀에게 행복은 신기루다. 그녀는 평생을 쌓아온 부와 명예와 욕망의 모래 구덩이에서 서서히 죽는다. 이 희극은 돈‧명예‧권력 등 신기루와 같은 행복을 추구하다 서서히 죽음을 당하는 현대인들의 비극을 풍자했다.
사실 내 주변에도 돈, 명예, 권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이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더 강렬한 햇빛을 동원하여 삶을 사막화시키고 이 사막화된 모래구덩이에 빠져 사는 친구도 있고 친지도 있다. 이분들과 대화를 하면 무슨 대화든 대화가 돈, 명에, 권력에 대한 자기 자랑으로 드라이해져 5분 이상 대화를 지속할 수 없다.
돈, 명예, 권력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순간은 이런 것이 드라이버(driver)가 아니라 강화제(reinforcer)로 사용될 경우이다. 강화제로 사용된다는 것은 무슨 일을 했더니 부수적으로 돈과, 명예와, 권력이 따라와 나를 등뒤에서 격려하고 밀어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목적한 일을 열심히 했더니 부수적으로 이런 것들도 덤으로 생겨서 그 목적한 일을 더 열심히 하게되는 선순환 고리가 생긴 경우가 강화제이다. 이렇게 따라온 돈, 명예, 권력은 기존에 해왔던 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하는 응원군이 된다. 반대로 돈, 명예, 권력이 드라이버로 사용된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돈, 명예, 권력을 더 많이 축적하는 것자체가 목적이 된 경우다. 그레이하운드 경기하듯이 돈, 명예, 권력을 앞에 고깃 덩어리로 달아놓고 이것을 먹기 위해서 경주를 시키는 꼴이다. 돈, 명예, 권력이 따라오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간 경우가 드라이버로 사용된 경우다.
지속적인 성과를 내거나 행복을 구가하는 회사나 사람들의 공통점은 삶의 ‘이유cause’로 ‘목적purpose’을 드라이버로 설정한 사람들이다. 목적은 ‘내가 왜 사는가?’ 즉 삶의 존재이유에 대한 답이다. 삶의 이유를 구성하는 목적을 드라이버로 삼고 살다보니 이것들이 실현되어 돈, 명예, 권력도 따라오고 이 선순환이 반복되어 지속적인 성과, 삶의 행복, 의미 있는 결과를 동시에 얻어낸 경우다.
돈, 권력, 명예를 드라이버로 사용하는 경우는 이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한 전술에 치중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관계에 치명상을 가하게 되고 결국 한 두 번 성공하는 경우가 생기는지는 모르지만 지속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 명예, 권력을 드라이버로 삼아서 따라간 경우는 사막 속에서 탄산수를 마시는 경험처럼 갈증으로 더 많은 탄산수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무너지는 경험으로 삶이 종결된다. 그레이하운드 경주가 상징하듯이 개들은 절대로 이 고개를 먹을 수 없는 운명이다.
나도 한 때는 논문으로 학문적 명예를 얻어보려는 욕심으로 눈이 멀었던 적이 있었다. 동료들로부터 논문 제조기라는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논문 수를 늘리는 재미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30년 학자 생활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때가 학자로서 가장 불운한 삶을 살았던 시절이다. 지금까지 내가 쓴 논문 중 글로벌 학계에서 인용되는 인용건수를 봐도 이때 썼던 수십건의 논문들이 인용되는 건 수를 모두 합해도 초기에 초심을 가지고 썼던 대여섯 편의 인용건수을 넘지 못한다. 학자로 세상에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고 상당기간을 허송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목적에 투자해 실제로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는 항해를 목적으로 설정하고 배를 만들거나,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리더로 가득한 사회를 꿈꿔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생물의 기원을 찾을 목적으로 사막에서 공룡의 알을 찾아 나설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목적을 지향하며 수행한 일과 그 일을 통해 얻어낸 변화의 체험이 진정한 행복의 기원이다. 또한 이 신성한 여정을 지지해주거나 동행해주는 도반들이 있다면 행복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목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행복을 체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행복이란 목적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지, 어떤 돈, 권력, 명예 등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돈, 권력,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경험에 비춰 단지 이런 것을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 아니라 이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은 바로 돈, 명예, 권력 때문에 삶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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