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회장이 임원세미나에서 변화를 강조해가면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어라”라는 주문을 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현대적 조직이 변화를 강조할 때 점진적 변화 보다는 조직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꾸는 급진적 변화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급진적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임원분들에게 급진적 변화의 주문을 낸 회장님도 마누라와 자식처럼 바꾸어서는 안 되는 요소가 있음을 직감했듯이 조직에도 자식과 마누라의 해당하는 요소가 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다. 이 자유를 통해 얻어낸 것이 급진적 변화라는 결과다.

조직에도 자식과 마누라의 해당하는 요소가 있다. 조직의 정체성이나 조직의 철학, 조직의 이념, 목적, 가치 등 조직의 정신적 지주를 구성하는 요소가 그것이다.

Merck & Company의 Roy Vagelos 회장은 Merck의 미래에 일어날 많은 변화에 대해서 예견하면서 이 과정에서 회사의 정신적 지주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Collins & Porras, 1997, p. 77):

세월이 흘러서 우리가 2091년을 살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때쯤 되면 우리가 지금 따르고 있는 전략이나 사업방식의 상당부분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이유로 수정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변화가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바꾸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Merck 인들의 정신입니다. 한 세기가 지나더라도 우리는 같은 기업가 정신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구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신성하고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시간을 초월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정신을 계승하고 지키는 동안 우리 Merck인들은 자연적으로 세상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반드시 회사의 정신적 지주를 꼭 지켜야만 하는 이유는 이 정신적 지주 속에는 자신의 회사가 다른 회사와는 달리 꼭 이 세상에서 지금 비지니스를 잘해야 하는 신성한 이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신성한 이유는 북두칠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 경영환경이 한치 앞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해지더라도 조직이 길을 잃지 않고 일관된 행보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와 같은 일관성은 조직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조직이 보여 줄 수 있는 신뢰의 기반이 된다.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경쟁우위에 해당하는 기술과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요소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자신만의 존재목적이라는 나침반이다. 존재목적은 자신의 조직이 세상에서 왜 이런 비즈니스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차별적 이유를 설명한다. 조직은 차별적 이유를 실현해서 미래를 만들어간다.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만 굳건하다면 구성원들은 무한한 자유를 체험한다. 이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것에 반하지 않으면 어떤 차별적이고 창의적 방법을 사용해서 이것을 달성해도 되는 자유를 체험한다. 존재목적이 분명한 회사는 이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것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몇가지 규칙들을 제외하고 모든 규칙을 제거한다. 규칙없는 조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조직이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의 수준 높은 구성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일을 통해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일에 협업한다. 존재목적에 의해서 규칙이 제거된 조직에 통제와 관리를 동원한 관료제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기업에 자율성이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이 없고 기술과 역량이 미래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일하는 회사의 구성원들은 존재목적을 실현해서 미래를 가져오는 일 이외의 일을 제거하는 것을 일로 생각한다. 획득한 자유를 토대로 쓸데 없는 일을 최대한 없애고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일다운 일을 찾아나서는 것이 이들의 주된 책무가 된다.

마누라와 자식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존재목적을 찾아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면 자유에 대한 체험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관리와 통제의 노예생활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