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6월에 영국 킹스 칼리지가 발표한 인지된 갈등수준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2개 갈등항목 중 7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평균에 비해 특히 심한 갈등을 분출하고 있는 항목은 빈부격차, 지지정당, 이념갈등, 성별갈등, 세대갈등이었다.

우리나라는 왜 갈등국가의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분포에 대한 착시 효과와 착시를 정당화시켜주는 매스컴의 역할과 갈등을 생산적으로 중재하는 정치의 부재라는 삼박자가 만든 현상이다.

무슨 말인가?

한국인이 가장 심하게 인지하고 있는 빈부갈등의 예를 들어보자. 아래 그림처럼 빈부격차의 실제 분포는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가 아니라 멱함수(Power distribution) 형태이다. 사람의 의도가 개입되어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의 분포는 대부분 멱함수 분포형태를 가진다. 반대로 키나 몸무게 등과 같이 사람의 의도가 개입할 수 없는 자연적인 것들의 분포는 평균을 중심으로 양극단이 줄어드는 정규분포이다. 인간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던 자신의 의도를 지속적으로 개입시켜 결과분포가 자신에게 유리한 양극화를 실현하는 멱함수가 되도록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그래프의 수평축에 부의 규모를 놓고 수직축에 이 사람들의 숫자를 넣고 분포를 그리면 재산을 많이 가진 상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숫자는 작지만 이들이 가진 재산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만 가진 것의 규모를 모두 합해도 상위가 가진 것에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다. 자산을 가진 정도를 가로축으로 사람의 숫자를 세로축으로 분포를 그리면 양극화 형태의 멱함수가 그려진다.

우리나라 근로자를 나눠 대기업 정규직으로 근로하는 사람들의 분포를 그려도 멱함수이다. 실제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근로하는 사람들은 근로자 중 상위 5-6%에 해당된다. 상위 5-6%의 사람이 대기업의 일자리를 독점하는 형국이다.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숫자도 멱함수 분포이다. 서울에 자신의 집을 소유한 젊은이의 분포도 멱함수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조건의 표준으로 제시하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다니고 집을 가진 사람의 분포를 조합해 그려보면 극단적 멱함수가 그려진다. 이런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결혼을 미룬다면 결혼은 확율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이상적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을 마치 평균처럼 착각하는 상향평균의 오류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대한민국은 조밀한 사회이기 때문에 친구에 이웃에 사돈에 팔촌을 찾아보면 당연히 이런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없다면 엄마친구의 자식까지 거론해 샘플을 만들어낸다. 주변에 이런 극단적 대상이 실제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이런 사람의 빈도수를 상향조정해서 정규분포의 표준으로 착각한다. 흔히들 대표성의 오류(representative heuristics)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다 생생한 차사고로 죽는 사람의 경우를 목격하면 차사고로 죽는 빈도수를 부풀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차사고로 죽는 게 비일비재한 평균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고는 평생에 한 번 정도 목격함에도 비일비재한 평균으로 생각한다. 친구나 이웃, 사돈에 팔촌이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고 집을 가진 사람이 결혼에 성공한 사례가 있게 마련이고 이들을 주변에서 목격하면 빈도수가 부풀려져 정규분포의 평균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매스컴도 사회적 현실에 따라 멱함수 분포를 정규분포로 착각하는 보도를 하게되고 사람들은 매스컴에서 보도한 것은 팩트체크가 된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다. 매스컴은 멱함수 분포를 정규분포로 기정사실화하는 화룡정점을 찍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이런 착시는 사람들이 분포를 착각하는 현상과 매스컴이 서로 합작해 만든 현실이다. 착각해도 일단 현실이라고 믿으면 현실이 된다. 잘못된 현실을 실제 현실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문제다. 허공을 걷고 있으면서 단단한 땅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에 하루하루를 허우적 거리며 산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갈등은 현실적 멱함수 분포와 착시로 만들어낸 정규분포 사이의 갭이 원인이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현실이 이런 표준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미 표준을 달성한 소수의 사람과의 비교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하는 순간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희생양으로 삼아 문제를 제기해 문제를 자신의 밖으로 외재화시킨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잠재적 전투상태가 전개된다.

이런 와중에 정치공학에 능한 탐욕스런 정치꾼들이 개입한다. 우리나라의 편재한 갈등이 정치이념, 성별갈등, 세대갈등으로 분출되는 이유는 이들 정치공학꾼들의 작품이다. 이념, 성별, 세대는 잠재적 갈등을 분출시켜 분풀이하기 좋은 대상이다. 다른 대상보다 명료하고 이원론적으로 편을 갈라치기 해가며 집단력을 동원해 싸우기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치갈등, 성별갈등, 세대갈등은 정치공학들의 농간에 따라 집단적 잠재적 갈등이 분출되는 분풀이 대상으로 전락해 공개적으로 다른 갈등을 대표해서 몰매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에 이런 잠재 갈등이 분출되고 점점 심화되는 근원적 이유는 따로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면 지금 당장의 어려움이 있어도 미래에 가져올 더 큰 가치와 삶에 대한 기대 때문에 참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넘어간다. 미래가 보인다면 현재 잿밥에 눈독을 들이다 더 큰 밥상을 엎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제대로 보인다면 모든 잠재적 갈등 문제에 대한 해결의 물꼬가 마련된다. 미래를 실현하는 공동의 가치가 등장하면 이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이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제심합력하기 위해 협업에 나선다. 심지어 분출된 갈등조차도 미래를 만드는 수단으로 생산적으로 동원하는 지혜를 보인다.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갈등의 근원적 원인이다. 미래가 없으니 지금 있는 밥그릇이라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정성의 무기를 들이댄다. 이런 표피적 공정성을 정치공학 숫자로 계산한 세력이 미래대신 공정성을 앞세워 정치를 장악한다. 하지만 미래의 상실이 갈등의 본질이고 다른 요소들은 따지고 보면 이런 잠재적 갈등을 실제 갈등으로 분출시키는 촉매제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현재 이런 미래를 보여주는 리더가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