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회사에서 개최하는 오픈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주제는 정원이 미달되어 있고, 정원을 채운 두 주제가 코칭리더십과 고객가치였다. 구성원들이 평소에도 공부를 많이 하는 회사여서 이 회사가 잡아낸 촉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L자 경제가 이끄는 침체의 골은 더 심화되여 성장의 불꽃이 차겁게 꺼져가고 있다. 고객가치를 살려내기 위한 고객체험을 다시 디자인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 회사의 명운이 걸린 고객가치를 살려내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업원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종업원 체험을 통해 에너지 레벨을 높여야 하는데 요즈음 가장 뜨거운 HR 이슈인 온보딩 설계나 코칭 리더십만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초뷰카시대에 모든 산업은 고객체험, 종업원 체험 등등의 화두가 이끄는 체험산업으로 전환된다.
요즈음은 고객들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품질이 좋다고 무조건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품질이 포화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능적 수월성은 더 이상 차별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기능을 넘어서서 다른 제품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게 하지 못한다면 경쟁력은 없다. 고객가치는 회사가 제시한 현재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고객이 이탈하지 않는 지점의 가격에 의해서 결정된다. 회사가 지금 어떤 물건을 100원에 파는데 이 가격을 120원으로 올려도 고객으로 남아 있다면 회사가 고객에게 파는 체험적 가치는 20원인셈이다. 가격과 품질을 통한 가성비의 가치는 다른 회사의 제품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카피될 수 있는 보편적 상품가치이지만 체험적 가치는 카피가 불가능한 가치이다. 회사가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에 녹여서 파는 체험적 가치는 제품의 가격저항선을 높혀 회사를 대체불가능한 회사로 만드는 가치다. 회사가 지속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이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이런 대체불가능성의 고객가치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건설할 때 소니를 가장 많이 벤치마킹했다. 소니를 시찰하고 나서 디자이너들을 소집해서 주문한 말이 있다. 소니의 모든 제품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소니 제품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삼성의 가전제품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삼성 제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것을 디자이너들의 삼성에는 소니처럼 통일된 디자인이 없다고 해석하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건회 회장이 주문한 내용에 대한 지독한 오해다. 이건희 회장은 소니제품 속에는 소니의 철학이 들어가 있어서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소니제품이라는 단서가 있으면 소니만의 고유한 체험이 후광효과로 떠오르는데 삼성 제품에는 이런 철학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을 질타한 것이었다.
이런 상상적 실험은 지금 삼성이 만든 휴대폰과 애플이 만들어낸 휴대폰과 중국이 만들어낸 각종 휴대폰을 섞어놓고 멀리서보고 가까이서 봐도 삼성의 안드로이드를 알아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는지의 문제다. 구별하지 못한다면 삼성 휴대폰은 가성비가 주는 상품가치는 만들고 있는지 몰라도 철학이 주는 체험적 가치라는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없다면 모든 제품에 반영되는 일관된 디자인이 있을 수 없다. 특정 제품의 디자인은 톡특해서 구별되더라도 이 디자인에 의해 촉발되는 체험적 가치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애플이 만들어낸 가치의 후광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미래의 모든 산업은 고객에게 차별적 체험을 통해 가격저항선을 높힐 수 있는지에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이 달려있다.
다른 여러가지의 철학적 과학적 정의가 있지만 5G가 상용화시킨 디지털 시대의 체험은 현상학에서 가장 적절한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후서얼의 현상학을 디지털에 맞게 잘 정의하고 있는 철학자는 키에르케골과 베르그송이다. 키에르케골의 주체성이나 베르그송의 지속(duration) 개념에 현대적 의미의 체험의 본질이 가장 잘 녹여져 있다.
현상학은 체험을 외부의 사건이 영사기가 되어서 이 영사기가 우리의 의식이라는 내면의 스크린에 영화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체험은 의식의 주체인 내가 영화를 보고 내면의 내 기억 속에 내러티브를 다시 각색해서 저장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수동적 관객으로 머물게 된다면 여기서 얻어진 메모리는 체험이라기보다는 경험에 머무른다. 경험은 그냥 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쏟아도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삶으로 축적되지 못한다. 베르그송은 이런 식으로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체험으로 채우지 못하고 흘려보낸다고 규정한다. 체험으로 채워진 시간만을 우리를 성숙시키는 <지속>이라고 정의했다.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내 내면의 의식에 상영되는 영화에 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개입해서 외적 사건이라는 영사기가 틀어준 내용을 주체적으로 새로운 삶의 시나리오나 내러티브로 재구성해낼 수 있을 때이다. 특히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정체성을 발견하는 내러티브를 마련할 수 있으면 체험은 최고의 체험이 된다. 미래의 모든 산업은 정체성을 발견하고 다시 재구축하게 만드는 체험에 대한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으로 수렴된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사건은 영화처럼 내면의 의식에 그대로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어서 체험의 소재를 제공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나 미래의 상상적 사건은 영화화되기가 쉽지 않다. 미래의 사건은 너무 추상적이고 과거의 사건은 시대가 변해서 현실성이 없다. VR/AR이 과거나 미래의 사건에 대해서 해주는 역할이 영상화(visualization)이다.
MBC에서 재작년에 방영된 <너를 만났다>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과거에 대한 영상화 작업이다. 제목이 <너를 만났다>이지만 이것이 감동을 준 계기는 너를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한 <나를 만났다>이다. VR/AR은 과거를 생생하게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영화화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의식에 현재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지위로 상영되게 만들어 준다. 과거의 어떤 사건과 화해하지 못한 사건이 있다면 다시 상연해서 화해함을 통해 체험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여 실시간으로 영화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기업들이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도 실현되지 않는 90%의 이유가 이렇게 실현된 현실을 구성원의 내면의 스크린에 생생하게 상영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사가 비전을 영화화하기 보다는 몇 년 후 매출액 몇조가 되는 회사, 재계 몇위가 되는 회사로 추상화하기 때문이다. VR/AR의 발달은 기업들이 미래의 비전을 영화화해서 구성원의 내면 의식의 스크린에 상영시켜 구성원들이 이에 맞는 내러티브를 마련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구성원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에 맞는 주인공으로서의 내러티브를 마련했을 때 얻는 체험이 종업원 체험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체험을 창줄해주는 수단인 비전닝이라는 프로그램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실시간 영화화가 가능해야 체험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현재라도 체험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공간과 이동의 제약 때문이다. 요즈음 맨하탄의 소호지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출퇴근이 가능한 뉴저지로 옮기면 지금 살고 있는 집세로 더 쾌적한 집을 얻을 수 있음에도 맨하탄 소호에서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편한함과 바꾸지 않는다. 지저분한 비싼 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현재에 대한 실시간 체험 스트리밍은 그 자리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본방사수해야 진정한 체험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VR/AR의 발달은 어디에 있어도 현재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체험이 가능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VR/AR의 발달로 현실과 가상공간이 통합되기 시작하면 경험으로 제공되는 산업공간은 무한하게 넓어진다. 미래의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공간은 바로 이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확장성을 보이는 기업들은 6G VR/AR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체험을 실시간 스트리밍해주는 것을 넘어서 경계가 없는 버츄얼한 공간에서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도와줌을 통해 더 큰 나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해주는 기업이다.
메타버스 산업이 뜨다가 지금 다소 주춤해진 이유는 메타버스에서 만들어지는 체험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만들 사람의 저작권과 거래의 신뢰를 보증해주는 블록체인이 제대로 가동되어야 하는데 블록체인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기반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메타버스에 관한 장미빛 이야기만 버블처럼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 기업들에게 목적경영이 중요한 이유는 목적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나 가치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경계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의 가격은 체험이 제시하는 목적과 철학의 진정성에 의해서 평가될 것이다. 모든 진정성의 원천은 목적과 목적의 관정에 해당하는 철학에 대한 진정성이다. 목적의 큰 울타리 안에서만 사람들이 자신의 왜곡된 정체성을 벗어나 제대로 된 정체성에 대한 진정성을 체험할 수 있다. 초뷰카시대에 울림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는 철학이나 목적이 있는 회사다. 목적과 철학이 없는 회사가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스트리밍 체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강국이다. 대한민국이 선점해야 할 것은 현실적 플랫폼과 트윈플랫폼의 메타버스 플랫폼이 통합되어서 작동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메타 플랫폼의 기술표준이다. 이 블록체인에 의해 가동되는 플랫폼 표준을 선점할 수 있는지에 국가의 사활이 걸려있다. 블록체인 플랫폼 기반의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마련된다면 6G와 함께 상용화 단계에 도달한 VR/AR은 체험의 스트리밍 시대를 알려오는 전령사가 된다. 한국기업들이 초뷰카의 디지털 혁명 속에서서 VR/AR로 활성화되는 체험의 스트리밍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블록체인 플랫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대한민국은 5G, 6G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