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7:57
[N.Learning] 영끌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죽음을 직면해보는 용기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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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죽음을 직면해보는 용기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자신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은데 왜 이런 무모한 일을 할까? 겉으로 보기에 일말의 희망 때문일거라는 생각이다. 멸망하는 것이 기정사실이기는 하지만 확율적으로 1% 기사회생하는 기적을 대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와 후세와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릴 것이다. 희망의 학문적 정의는 모두가 받아들인 절망 속에서도 1%의 가능성을 믿고 일어서서 목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모든 것을 다 잃는 순간이 이어졌어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쓰러진 절망 속에서 누군가는 1%의 가능성을 믿고 희망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다 잃었을 때 인간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희망 뿐이다.
이런 희망이라는 확율적 관점을 넘어서 효용의 절대가치를 중시하는 경제학적이 측면에서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유리할까?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반복적 게임에 참여하게 하고 이 게임에 임하는 방식을 관찰해서 이론을 세운다. 연구를 망치는 것은 어떤 정해진 게임이 이 연구의 마지막 게임(End Game)이라고 알려졌을 때이다. 평상시에는 합리적으로 게임을 계속하다 이번 게임이 마지막 게임이라는 고지를 들으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합리적인 방식을 버리고 가진 것을 올인해 가장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거나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기회가 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영끌이라는 것을 한다. 영끌에 빠진 사람들의 결과는 누가봐도 비극이다. 영끌로 게임이 프래이밍되면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에서 비윤리적인 방식으로라도 이겨야 한다. 사람들이 대박에 그리 목메는 이유도 한번의 종결게임으로 삶이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제학 행동주의 실험에서는 이런 비합리적 결정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번의 연속된 게임을 할 경우라면 게임에 참가자에게 20번 정도 게임을 할 것이라고 고지한다. 10번만에 게임이 끝난다는 것을 사실대로 고지해주면 10번째 게임에서 무슨 비합리적 행동을 해서 지금까지의 실험결과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칸느만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암울한 상황에 몰리면 몰릴수록 이번의 게임을 마지막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올인하는 비현실적 게임을 할 개연성이 높다.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워지면 영끌하는 사람들의 수가가 많아지는 이유다. 이들은 자살의 행렬에 뛰어든 레밍의 쥐나 악어가 살고 있는 강으로 몸을 던지는 아프리카 누우 떼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를 생각하며 사과나무를 심는 행동을 할까? 게임은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목숨은 살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도박에 올인하는 성향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번 올인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목숨은 붙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종결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이 들면 게임의 전략이 보수적으로 바뀐다. 부와 권력은 다 내려놓고 가야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모아논 돈을 마지막 날에 올인하기보다는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나무도 심어주는 행동에 돌입한다.
하이데거는 우리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생산적이고 창의적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죽음의 생산성이라고 명명한다.
죽음의 생산성는 실제 죽는 날이 많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상상적으로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상상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 삶의 마지막 존재 목적과 최적으로 연동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이런 의사결정은 결국 좋은 과실을 가져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오늘이 존재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개입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해가며 탈로해서 치닫고 있는 자신을 다시 원복시키는 작업이다.
실제로 Netflix는 오늘이 넷플릭스가 지구에서 사업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가정할 때 지금처럼 의사결정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서 cultural deck이라는 문화적 플랫폼을 만들었고, 스티브 잡스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가정했을 때 어제 했던 일을 계속할 것인지를 묻는 방식으로 애플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파타고니아는 이런 생각들을 뒤집어서 지구를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사업한다는 희망의 미션을 세우고 회사의 비지니스를 여기에 정렬시켜서 세상에서 가장 정당성을 인정받은 기업시민으로 회사를 키웠다.
삶의 가장 합리적 의사결정은 세상에 개입이 끝나는 죽음의 순간에 실현될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실현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미래, 현재, 과거를 정렬할 때 실현된다. 오늘 게임이 마지막 게임이라는 초조함 때문에 결과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삶을 벗어날 수 있을 때 삶의 평온함은 시작된다. 마지막 게임이라는 생각으로 결과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씨앗과 나무를 키우는 일에 올인하는 삶이 지속가능한 삶의 비결이다. 목적에 근접해서 하는 일은 일이라기보다는 그자체로 놀이이다. 목적이 하는 일에 의미의 스파크를 부여해 항상 열정적으로 몸과 마음이 타오르도록 돕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희망에 대한 생각과 하이데거의 죽음의 생산성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운다. 죽음을 직면해보는 용기가 영끌에 중독된 사람들을 살려내는 해독제이자 이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희망의 불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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