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갖가지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어떤 유혹은 너무 매력적이고 고혹적이어서 거부하기 힘들다. 이런 유혹에 따라서 살게 되면 삶의 탈로(Derailment)가 시작된다.

탈로란 자신의 삶의 사명이자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철로를 벗어나서 유혹이 시키는 대로 엉뚱한 곳으로 내달리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탈선한 기차를 상상해보라. 궤도가 없는 곳을 달리기 때문에 아마도 미친듯이 널 뛰다가 어느 순간 충돌하던지 멈추게 되는 비극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한국에서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현상들이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은 노래로 탈로를 유도해내는 유혹의 신이다. 위험을 경고하는 사이렌과 어원이 같다. 세이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섬에 배가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이들을 바다에 뛰어들게 하는 충동질을 일으킨다. 그녀들이 특히 암초와 여울목이 많은 곳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노래로 유인한 선박들이 난파시키기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탐욕을 일깨우는 세이렌의 노래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세이렌도 두 차례에 걸쳐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한 명은 오뒤세우스이고 다른 한 명은 음악가이자 시인인 오르페우스이다.

오뒤세우스가 선택한 방식은 수동적 저항의 방식이다. 항해 도중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하여 부하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결박을 풀지 말라고 했다.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오뒤세우스는 결박을 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귀마개를 쓴 부하들은 명령에 순종하여 그를 더욱 단단히 결박하였다. 결국 선박의 항해는 계속되었고 노랫소리는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섬을 지나갈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뛰어난 음악가이자 시인인 오르페우스이다. 오르페우스가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은 더욱 적극적이다.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아르고라는 선박을 타고 항해하던 도중에 세이렌의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오르페우스는 세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맞대응한다. 세이런들은 오르페우스에게 졌다는 것을 알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탐욕을 잠재우는 자장가다.

수동적 방식을 택하는 사람과 능동적 방식을 택해서 유혹을 벗어나는 사람들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적극적 방식으로 탈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 강해야 하고 또한 세이렌들을 만났을 때 자신 믿음의 더 고혹적인 선율을 들려준다. 8-90%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도달해야만 하는 나침반으로 일컬어지는 사명을 목적지로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세이렌의 유혹에 빠져 길을 돌고 돌고 헤매다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객지에서 삶의 종말을 맞는다. 나머지 8-9%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정도가 되면 자신을 결박해서라도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 법조인들을 오디세우스 역할을 자청해가며 법조인이 되지만 이들 대부분은 몸부림쳐 가며 결박을 풀고 귀마개를 벗어던지고 세이렌의 재물로 뛰어들었다. 오직 1%의 사람들만 오르페우스의 방식을 택한다. 결국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은 1% 오르페우스에 의해서다.

온 나라가 세이렌의 탐욕을 부르는 고혹적 노래 소리에 빠져 혼돈 속을 치닫고 있는 와중에도 안타깝게 대한민국의 오르페우스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아침이슬 작곡가이자 학전을 만드신 김민기 선생이다.

김민기 선생은 뛰어난 종합 예술가로서 유전자 복권을 타고 나신 분이다. 하지만 선생은 유전자 복권을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적으로 유용하지 않고 세상을 밝히는 횃불로만 사용했다. 학전을 만들어 무명으로 묻힐 수 있는 예술가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유전자 복권 당첨금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학전에서 길러진 배우나 가수들은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김민기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자신들이 뛰어난 배우이자 예술가로서의 유전자 복권을 사적으로만 남용하지 않는다. 이들 삶이 결이 있는 이유는 이들 춤 노래 예술에는 김민기 선생이 임재해 있기 때문이다.

김민기 선생이 작곡한 많은 노래말은 선생 삶의 내러티브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선생이 읊조리듯 부르시던 노래는 남에게 소리쳐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에게 들려주는 소박한 진실이었다. 김민기 선생님의 삶의 진실은 진정성의 울림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아 스파크를 일으켰고 어려운 국면마다 이들을 고통과 좌절에서 일으켜 세웠다. 선생의 삶 자체가 진성리더십의 정의다.

세이렌은 위험을 경고하는 사이렌과 같은 말이다. 자신 삶의 내면의 나침반인 오르페우스를 잃었다면 누구든 사이렌 소리를 세이렌 노래 소리로 듣고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짓에 몰두할 것이다.

진성리더의 삶을 사신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뜻은 저의 가슴 속에 오르페우스로 부활해서 세이렌의 유혹을 극복하는 나침반으로 세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