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21기 목요 세미나를 진행하는 와중에 리더의 책임감에 대한 문제가 중심 이슈로 떠올랐다. 책임질 일이 생겼을 때 리더가 직권을 남용해가며 책임을 구성원에게 전가 하거나 자신의 꼬리조차 잘라내는 엄혹한 현실을 일상으로 생생하고 목격하고 있다. 리더가 져야 할 책임은 리더 어깨에 올라탄 귀찮은 원숭이를 넘어서 리더가 자신의 숭고함을 입증할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나 리더나 기업도 길을 잃고 헤매는 시대다. 초뷰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의 가시덤불 속을 헤매다 상처를 받는다.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상처가 노출되는 순간 퇴출 당할 두려움 때문에 모두가 상처를 숨기고 산다.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상처에 생긴 구더기가 무서워 거적을 덮어 놓고 살이 썩어가는 고통을 감내해가며 산다.
각자도생의 대한민국에서 거적을 덮어 놓은 고통은 사무실에 난입한 코끼리다. 코끼리가 언제 난동을 부릴지 몰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해야 함에도 사무실 안에 누구도 코끼리를 못 본 척하고 있다.
진성 리더(Authentic Leader)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까?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2~14).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가르침을 주는 것을 보면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책임을 전가 하거나 꼬리 자르기를 일삼은 리더의 문제는 보편적 이슈였다.
예수는 이들 꼬리자르고 책임 전가를 일삼는 그 시대의 리더에게 집단에서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었다면 목자는 이 길 잃은 양의 아픔을 찾아 모든 것을 제치고 길을 떠나라고 가르친다. 이 성경의 목자가 많은 구성원을 거느린 조직의 리더이고 이 리더가 모든 구성원을 일일이 만나 개별적 관심을 보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지금 조직에서 가장 소외되고 떨어져 나와 있는 사람에게 개별적 관심을 우선적으로 베풀 것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길 잃은 양이 조직이 맡긴 사명의 책무를 수행하다 길을 잃은 해병대의 채상병인 경우 이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은 리더의 책무이자 책임이자 도덕적 양심에 관련된 문제다.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이 리더의 도덕적 양심의 문제인 이유는 조직의 사명을 수행하다 길을 잃었고 길 잃은 양의 가진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지 긍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구성원의 아픔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매번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 리더는 최소한의 양심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긍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선원들이 모두 각자도생을 찾아 나선 난파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역성 혁명으로 끌어 내려진 왕들도 모두 꼬리 자르기와 가장 힘 없는 백성들에게 책임 전가를 일삼던 왕들이었다. 베트남 전쟁 비사에도 전쟁의 와중에 부하에 의해 암암리에 살해된 미국 장교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음이 기록되어 있다.
조직에서 소외되고 길 잃은 사람에 대한 리더의 긍휼은 지금 잘 나가고 길을 잃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구성원에게도 심리적 안정이라는 울타리를 가져다준다. 길 잃고 소외되어 집단 구성원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에 대한 리더의 관심은 본인도 미래 어느 시점에 길을 잃었을 때 리더가 목자로 나타나서 긍휼의 사랑을 베풀어줄 것임에 대한 확신을 준다.
가장 아픈 한 사람에게 베푼 긍휼의 사랑으로 리더는 모든 구성원에게 작동되는 심리적 안정 지대를 위한 울타리를 만들어낸다. 한 마리 양의 아픔에 리더가 긍휼을 보인다는 것은 리더십 교환이론 괸점에서 집단을 모두 내집단으로 만드는 전략다. 구성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여 책임지는 리더가 만든 울타리는 전 구성원이 조직 전체의 목적을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전문성과 역활에 충실해가며 팀으로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책임이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용기의 문제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손해를 넘어 최소한의 아픔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조직에서의 신뢰란 구성원이 조직의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 오는 고통을 직면하는 용기의 잔고다. 신뢰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용기 있는 리더만 만든다.
리더가 용기 있게 먼저 책임지는 숭고함이 구성원에게 전염되어 공유된 책임(Shared Responsibility)까지 만든 조직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신뢰잔고를 만들어낸다. 한 집단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상처 받을 개연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천문학적 신뢰잔고의 기반이다. 신뢰잔고는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는 어음으로 사용된다. 신뢰잔고가 넘치는 조직의 구성원 누구도 집단에서 상처 받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목자가 가장 아픈 사람에게 긍휼의 사랑을 베풀고 책임지는 행동이 시발점이 되어 모든 구성원이 상처 받을 여지를 허락하기 시작할 때 집단차원의 공유된 책임이 새로운 규범이 된다. 공유된 책임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신뢰자본을 만든다.
팀워크를 염두에 둔 지혜롭고 공의로운 리더는 강자가 아니라 가장 아픈 사람들 옆에 서서 모두가 한 팀이 될 수 있는 울타리를 설계하고 설계된 울타리 안에 다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마음 놓고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대의 성소를 운용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길을 잃고 상처 받을 운명인 초뷰카 시대 조직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목자의 지혜를 가진 진성리더가 리더로 세워져야 한다. 목자의 지혜를 가진 진성리더들만이 구성원들이 서로의 길 잃음과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들을 온전한 전사로 치유해서 다시 주인으로 세울 수 있는 환대의 성소를 운영한다.
"리더십이란 책임감이다 (Leadership is responsibility)."
-피터 드러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