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2 11:53
[N.Learning] 민주주의의 회복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아픈 대한민국 치유법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651  
민주주의의 회복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아픈 대한민국 치유법
대한민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의 지원을 받음과 동시에 나라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신자유주의의 시장에서의 무한경쟁 방식으로 교체하도록 강요받았다. 그간 대한민국을 움직여왔던 가부장적 온정주의로는 빚을 못 갚을 것이라는 IMF의 판단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IMF에 의해 강제적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근 30년 간 대한민국의 정신을 장악해왔다. 일제 강점기 35년이 일본이 제국주의 군대를 동원한 신민화였다면, 지난 30 여 년은 미국이 경제력을 동원해 대한민국 정신을 개조한 경제 신민화였다.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IMF의 경제력에 대한 신봉은 한국 동란시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주었던 물리적 힘에 대한 고마움과 오버랩되어 더 강렬하게 한국인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자신의 주체성보다 유독 힘의 우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식민주의 잔재인 뉴라이트와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할 신앙이다.
힘을 상징하는 일본과 미국에 대한 맹목적 의존성은 우리 사회의 의식 깊은 곳을 장악했다. 대한민국에 일만 터지면 반드시 뉴라이트의 욱일기와 미국의 성조기가 등장한다. 성조기나 욱일기를 들고 나오는 태극기 부대와 극우 기독교 부대는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국가의 효능감에 대해 믿음이 없다.
대한민국도 신자유주의의 덕택으로 기존의 가부장적 온정주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적 부를 성취하는데 성공했다. 신자유주의 신인 IMF에게도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거품이 사라지고 2008년 금융 위기가 현실로 닥치자 문제의 징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전략인 시장에서의 초단기적 무한경쟁을 통해 일등이 되거나 이등이 되는 것을 성공으로 삼았던 신자유주의 전략이 점점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의 소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이 작동되는 조건은 경기가 붐을 일으켜 누구든 큰 목표를 정하고 일사분란하게 앞만 보고 달리면 떡고물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상황일 때다. 지금처럼 L불경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 대한 강요는 모든 사람을 루저로 좌절시킨다.
소위 우로보러스 현상이다. 우로보러스란 배고픈 뱀이 자신의 꼬리를 먹어가며 생존을 유지하는 비현실적 현상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L자 불경기가 뉴노멀이 되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강자는 우로보러스 뱀이 되어 약자를 먹어 치워가며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약자들이 사라지면 자신들 중 평가를 통해 약자를 분리해 놓고 먹어가며 생존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모든 사회 주체가 우로보러스 뱀이 되어 약자를 먹어 치울 때 약자는 극단의 고통을 느낀다. 약자의 아픔은 먹는 강자에게도 은연 중에 투사되어 강자를 병들게 만든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몸 중 약한 부분인 꼬리를 평가해서 먹어 치울 때 강자도 아픔에서 면제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사회 전체가 아프다는 점이다. 최근 건강보험 공단 통계에 따르면 우리에게 가장 강자로 인식되는 대기업 종업원들의 50-60% 이상이 우울증이나 경계성 정신증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공식적 통계에 잡힌 대상들의 문제로 빙산의 일각이다. 실제 자신이 아픈 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과 아프지만 병원에 가지 않아서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합해서 추론하면 대한민국이 아프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우로보러스가 주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직장에서 해결하지 못한 아픔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가정에서는 부모, 형제, 오빠, 누나, 삼촌, 이모다. 이들이 회사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아픔과 스트레스를 가정으로 가져오고 가정의 가장 약한 고리인 자녀들을 전염시킨다. 자녀들의 아픔은 다시 학교를 전염시키고 더 약한 고리를 찾아 사회 대부분을 전염시켰다.
이런 아픔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지독한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하나는 권위주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방식이다.
권위주의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은 내면의 근력을 잃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권능감(Self-Efficacy)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대상을 우상화 시켜 여기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들은 힘 있는 대상 앞에서는 맹목적으로 굴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힘 없는 대상은 희생양으로 삼아 악마화 하고 공격하여 자신에게 굴종시키는 이중적 방식을 사용한다. 대한민국의 극우 태극기부대와 극우 기독교 군단의 본 모습이다. 이들은 전광훈, 손현보, 미국, 일본, 윤석열 등등을 자신들의 우상화의 대상으로 삼아 깃발을 세운 반면 여성, 동성애자, 북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인을 악마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주체적 권능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힘 있어보이는 대상을 우상화해가며 의존하거나 약한 대상을 공격함을 통해 자신 문제을 투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공동 주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주의 기관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들 부대의 전령들은 헌재와 법원을 공격해가며 민주주의 상징을 파괴하도록 독려한다.
아픈 대한민국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신자유주의의 우로보러스가 쓰러트린 아픈 대한민국에 진통제를 주고 상처에 반창고를 붙인다고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상처를 직면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가 상처에 거적을 덮어 놓았지만 오히려 거적 속에서는 구더기가 생겨 상처를 더 심각하게 갉아 먹고 있는 형국이다. 고통이 해결되기보다는 고통이 점점 더 배가 되고 있다.
상처에 거적을 덮어 놓고 상처를 남의 문제로 투사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용기의 문제다. 상처의 거적을 열고 상처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만이 상처의 본질을 치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의 아픔을 아픔으로 인정하지 않고 아픔을 견디기 위해 남에게 투사 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투사가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음을 각성하고 자신의 아픔을 주체적으로 치유하고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때 온전한 치유가 시작될 수 있음을 용기 있게 인정해야 한다. 한 사회의 공동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공동의 아픔을 인정하고 아픔의 거적을 들춰내고 모두가 공동의 주인으로 나서서 치유하는 행동이 구성원 모두를 주인으로 세우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이념을 넘어 공동체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치유에 나서는 긍휼의 정신이다. 긍휼은 아픔조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행동이다. 이런 긍휼의 사랑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도 상대를 긍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서로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역으로 사랑이 식으면 주인공이었던 상대를 자신의 욕망의 도구이자 노예로 격하시킨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을 공동체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긍휼에 기반한 사랑의 정신이다. 사랑이 없는 민주주의는 본질이 사라진 허구 이념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사랑이 없다면 극우 파시즘과 차별점이 없다. 극우 기독교인들이 손현보와 전광훈을 따라 나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고사하고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힘도 모두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이 송두리째 잃은 것은 사랑이었다.
우리의 문제는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기회만 있으면 남들에게 던지는 투사 행위로 진정한 자신과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모두 잃었다. 초기의 투사는 남들에 대한 가벼운 험담이나 뒷담화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남들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활 시위를 당겨 상처를 입히는 비윤리적 행동다. 진정한 공동체의 신뢰는 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모두 이런 투사 행위로 상처 받은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용기와 상처조차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긍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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