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1 21:43
[N.Learning] 근원적 변화를 위해선 묘판을 바꾸어야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4,868  
 

근원적 변화를 위해선 묘판을 바꿔야


얼마 전에 출간한 졸고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 지식노마드』에서 본인은 일관되게 행동주의 변화의 함정에 대해서 지적했다. 지금까지 모든 변화 경영서는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만 고쳐진다면 변화가 다 완성될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지난 20년간 변화를 연구하고 컨설팅 한 경험에 의하면 행동중심의 변화는 함정이 있다. 행동이나 습관을 제거한다고 해도 행동이나 습관이 재생되는 묘판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묘판은 비슷한 행동이나 습관을 언제든지 재생시키기 때문이다. 일례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동안 사람들은 살을 안 뺄 수가 없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사람들도 이 점을 이용해 몇  일 동안 살을 몇 키로 못 빼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광고하기까지 한다.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살찌는 것과 관련된 습관이나 행동을 제거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약속대로 살은 잘 빠진다. 다이어트의 성공을 선언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와서가 문제이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압력이 사라지는 순간 묘판은 살찌는 습관과 행동을 재생시켜 요요현상을 겪게 하고 옛날의 체중으로 돌려놓는다. 묘판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만 바꿀 경우 겪는 대표적 현상이다. 본인은 많은 기업과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서 묘판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근원적 변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증면해 보여주었다.


그럼 근원적 변화의 대상이 되는 묘판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나 조직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이것이 명하는 대로 길을 찾아 나서게 하는 정신적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는데 묘판이란 바로 조직과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 내비게이션을 말한다. 이 정신적 내비게이션은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도 가지고 있어서 구성원들은 이 내비게이션을 공유해가며 자신 회사만의 비즈니스 하는 방식을 구성해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조직들이 1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그간 전혀 업데이트가 안 된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세상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길을 찾아가면 많은 사고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한두 번 사고를 당하면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의 문제점을 찾아서 고치기보다는 세상은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설사 밖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았던 길로만 다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에 세상은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자신의 내비게이션은 점점 더 유용성이 떨어진다. 유용성이 떨어질수록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의 감옥 안에 숨어버린다. 자신의 길을 찾는데 도움을 주어야 할 내비게이션이 오히려 자신을 감옥 속에 가두어 넣고 밖의 세상은 위험하니 감옥 속에 안전하게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속삭임을 보낸다. 자신도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밖으로 나가 봤자 사고만을 당하는 위험한 세상을 직면해야 하니까 감옥이 차라리 안전하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 할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영원히 감옥에 갇혀 살다가 세상으로부터 잊혀 버린다.


이 이야기는 최근 코레일에게 일어나는 상황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근에 자주 일고 있는 안전사고는 코레일이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내비게이션이 유용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조직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코레일의 구성원들의 이에 대해 대응하는 태도이다. 비슷한 안전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코레일의 내비게이션이 유용성이 떨어졌다는 증거임에도 이 유용성이 떨어진 내비게이션을 근원적으로 업데이트하기보다는 내비게이션 감옥 속에 숨어서 고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속내를 보일수도 있다. 기존 내비게이션을 버리고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선택하기 보다는 기존 내비게이션의 부서진 부분을 땜질해서 다시 쓰고 싶어 하는 속내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바꾸는 것은 불안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상황을 고식적으로 해결할수록 문제는 점점 커져서 어느 시점에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맞이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과 조직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시뮬레이션 하는 실험이 냄비 속에 삶아 죽는 개구리 실험이다. 개구리는 변온동물이어서 어떤 동물보다 변화에 적응이 빠르다. 이 변화에 자신만만한 개구리를 잡아다 차가운 냄비 속에 집어넣는다. 개구리는 처음에는 자신의 체온이 있어서 움찔하지만 그냥 냄비 속에 남아 있다. 뛰쳐나가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금방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개구리는 온도에 적응한다. 이처럼 개구리에게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주고 온도를 10도 20도 올린다. 온도가 올라감에도 개구리는 자신이 변화에 적응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뛰쳐나오지 못하고 삶아 죽게 된다. 온도가 80도 정도 되면 개구리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지금 뛰쳐나가지 못하면 죽는다고. 그러나 온도가 80도 이상이 되면 개구리는 생각을 바꿀 수 있어도 몸은 이미 마비가 된 상태여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삶아 죽어가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관조해가며 서서히 죽는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변화에 적응했다는 허위적 믿음에 쌓여 개구리처럼 삶아 죽는 현상을 점진적 죽음 slow death라고 칭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기업들은 대부분 점진적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사라졌다. 세상은 뜨거워 질대로 뜨거워졌는데 자신만은 적응했다고 믿고 있다가 삶아 죽게 된 케이스이다. 반대로 개구리를 100도씨의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을 경우 개구리는 뛰쳐나와서 목숨을 구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Deep Change라고 칭한다.


코레일에서 직면해야 할 상황은 바로 지금이 변화에 적응했다는 믿음을 버리고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뛰쳐나오는 Deep change를 선택해야 할 시점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Deep change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의존해왔던 묘판인 낡은 내비게이션에 대한 땜빵식의 처방을 넘어서서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기왕에 업데이트 하는 길에 10년 후에도 유용한 내비게이션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기존 내비게이션을 땜질하는 것은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여서 제대로 고치는 것이 불가능해도 구성원들이 10년 20년 후에도 쓸 수 있는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찾아 나서는 것은 오히려 쉬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에서는 위대한 변화와 혁신을 성취한 기업들이나 사람들이 공통으로 따르는 변화와 혁신의 방법론으로 급진적 거북이라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급진적 거북이는 자신의 10년 20년 후의 내비게이션에서 구현될 세상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과격하고 급진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를 구현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거북이처럼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것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서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에서 변화의 긴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위대한 기업이나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창대한 변화의 시작은 항상 미약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미약한 움직임 밑에는 창대한 변화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구성원들의 근원적 신념이 깔려 있었다. 이 믿음에 근거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서 차근차근 변화를 일구어온 사람들이 급진적 거북이들이다. 코레일의 임직원 모두가 급진적 개구리가 되어  모든 국민이 녹색대한민국을 꿈꿔가며 철도를 국민의 교통수단으로 사랑하는 날을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은 것,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것,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변화 여행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