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처럼 한번 리더는 영원한 리더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20세기 조직처럼 경력이 연공서열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결정될 때는 한번 리더였던 상사는 영원한 상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지금의 검찰조직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고리타분한 주장이다. 21세기는 무경계 경력 사회이다. 조직 안에서 자신의 경력 사다리를 타고 승진하는 것은 많은 경력경로 중 하나에 불과 할 뿐이다. 경력을 더 인정해주는 회사로 이직을 할 수도 있고 회사 안에서도 다른 선배들을 제치고 팀장이 될 수 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리더십이 발아되는 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환경에서 성공한 리더십 스타일이 다른 환경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20세기의 리더십은 상황을 상수로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행동 혹은 스타일이나 리더십 특성 혹은 스킬을 연구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현대적 리더십 이론은 대부분이 상황이론 contingency theory으로 바뀌었다. 주어진 상황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가정하고 이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리더십 행동이나 특성 즉 리더십의 씨앗을 찾아 나가는 연구들이 리더십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피들러 Fielder는 상황을 직무구조가 정형화 되어 있는지, 리더와 활로우어와의 관계는 좋은지, 리더는 실질적 파워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상황을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 혹은 중간 상황으로 나누고 상황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는 과업중심의 리더가 상황이 중간 상황일 때는 관계중심의 리더가 이끌도록 조언하고 있다. 허쉬 Hersh와 블랜차드 Blanchard는 상황을 부하들의 성숙도를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몰입해 있는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넷으로 나누고 이들에 맞춘 리더십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즉, 부하가 일에 대한 몰입과 능력이 모두 뛰어날 경우는 위임형 스타일을, 몰입과 능력이 다 떨어 질 때에는 지시형 스타일을, 능력은 뛰어난데 몰입이 떨어지는 부하들에게는 참여형의 리더십을, 몰입은 뛰어난데 능력이 떨어지는 부하들에게는 코치형의 리더십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하우스 House는 자신의 목표 경로모형에서 리더십의 문제를 부하에게 얼마나 잘 동기를 부여 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접근하고 리더란 부하들이 목표를 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장애를 제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이 장애를 제거해나가는 과정에서 부하들의 특성과 직무의 특성을 파악하여 지시적이거나, 지원적이거나, 참여적이거나, 성취지향적 스타일을 골라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 있다. 블룸 Vroom과 이튼 Yetton은 리더십의 문제를 상황에 따라 민주적 의사결정인지 독단적 의사결정인지, 참고형의 의사결정 스타일을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로 판단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여러 변수에 따른 의사결정줄기 decision making tree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상황이론은 21세기 리더십 이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나 인간의 리더십을 상황에 수동적으로 맞춰가는 존재로 상정하는 문제나 리더십이 효과성을 발휘해서 결국 상황이 바뀌게 되는 상황에서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시간적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즉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상황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새롭게 정의해서 해석해 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여 활로우어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결국은 상황에 종속되기 보다는 상황을 새롭게 프래이밍해서 바꿔나갈 수 있는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상황이론에서는 이와 같이 리더로써 비전을 제시하여 상황을 바꿔나갈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다른 비판은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할 경우 그 발휘의 결과가 상황에 피드백 되어서 결국 상황이 바뀌게 되고 그럴 경우 기존의 리더십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는 자기 부정적 상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소위 리더십 성공의 역설 paradox of leadership success 혹은 성공의 독재 tyranny of leadership success 라고 일컬어지는 상황이 초래된다. 요즈음 리더십에서 재평가 논의가 활발한 박정희 대통령이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정권을 장악했을 때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모든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린 상황이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개발독재라는 시의 적절한 리더십 스타일로 리더십을 행사했다. 결국 이 리더십 스타일은 주효했고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효과를 보기시작한 상황이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과 상황과의 관계가 점점 안 맞아 떨어지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이제는 먹고 살게 되었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그간의 불만을 민주적이고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변모했다. 상황과 리더십 스타일이 안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리더들은 상황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 스타일을 채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보장해주었던 과거의 리더십 스타일에 더욱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결국 자신의 성공 때문에 리더십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리더십 성공은 이면에 실패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처럼 역설적이다. 리더는 자신의 스타일에 따르지 않은 사람들을 권력을 동원해서 압제하기 시작하고 결국 리더는 독재자가 되어 자신이 판 무덤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21세기 리더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상황과의 적합성도 중요하지만 리더가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리더가 상황을 변화시킬 경우 직면할 수 있는 성공의 독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리더십의 문제를 역동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이 변화한 상황에서 리더가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을 마련할 수 없다면 리더가 적절한 시점에서 물러나 주는 리더십의 승계문제도 중요한 리더십의 이슈로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