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협업의 운동장 만들기 본 저서에서 전략적 파트너는 여성과 남성 간의 파트너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그냥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냥 좋은 관계의 파트너십이지 전략적 파트너십은 아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조직이 정한 공동의 존재우위에 대한 약속인 목적과 사명을 실현시키기는 일에 파트너로 기여하는지의 문제이다. 남성도 이 존재우위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전략적 파트너는 아니다. 선진기업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대로 된 전략적 파트너를 육성하여 회사의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임원자리를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회사가 초우량기업인지 그냥 평범한 회사인지는 이 파트너십에 포함되는 맴버십을 회사가 설정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할 수 있는 인재에서 찾는지 아니면 남성,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사회적 범주의 기준으로 선정하는지의 차이이다. 본 저서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넘어서 회사의 파트너십으로 기여할 수 있음과 이를 위해 남성과 여성의 협업의 운동장을 설계하는 법을 제시한다. 세상은 임의로 여성과 남성,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전문적 직업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권세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좋은 대학 나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가방끈이 긴 사람과 짧은 사람, 외모가 준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등등으로 범주를 나누고 질서를 부여한다. 이처럼 세상이 임의로 나눠 놓은 이원론적 범주를 받아들이고 범주의 한쪽에 할당되는 것마저 저항 없이 받아들이면 차별과 편견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한다. 우리가 나서서 소멸시켜야 할 차이는 편견과 차별의 원천이 되는 범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이이다. 사회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을 만들어 낸 핸리 타이제펠(Henry Tajfel)과 존 터너(John Turner)는 역사에 남을 실험을 통해 아무 의미도 없이 임의로 할당된 범주가 차별과 편견의 시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은 실험 대상 학생들이 실험실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제비뽑기를 시켰다. 제비뽑기로 빨간 스티커나 파란 스티커를 뽑게 하고 이들이 제비뽑기 결과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 빨간 스티커를 받은 학생들은 빨간 스티커끼리 파란 스티커를 받은 학생들은 파란 스티커끼리 모여 앉았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과제를 시키고 여기서 얻어진 보상을 임의로 상대 집단의 구성원과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게 배분하는 일을 시켰다. 학생들은 공정하게 배분해야 할 규칙을 어겨 가며 자기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는 유리하게, 상대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보상을 배분했다. 이 실험은 같은 색깔의 스티커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차별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적 실험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 단순한 실험보다 더 미묘하고 복잡하게 돌아간다.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에 신이 대신 뽑은 제비로 빨간 스티커 그룹에 속하기도 하고 파란스티커 그룹에 속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재능없이 평범하게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여성으로, 어떤 사람은 남성으로 태어난다. 이 모두가 자신이 뽑은 스티커의 색깔이 아니라 신이 자신을 대신해서 뽑아 준 스티커의 색깔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부유한 부모 밑에서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그 사람은 신이 대신 뽑아 준 유전자 복권에 여러 차례 당첨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임의로 신이 뽑아 할당한 범주임에도, 사람들은 일단 어느 범주에 할당되면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범주에 성벽을 세워 가면서 상대가 자신의 범주에 못 들어오게 막는다. 이 범주를 기반으로 더 세련된 범주들을 임의로 나눠 놓고 높은 범주에 속한 사람은 자신과 같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과 연대를 구성해서 자신의 행운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범주를 집단적으로 열등시하고 차별한다. 낮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높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에 대항하여 생존권을 얻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폄하하고 마음속으로 증오한다. 이 범주가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바꿀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이 되면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계층’ 혹은 ‘계급’이라고 못 박아 놓는다. 사회가 임의로 만들어 낸 범주적 차이는 때로는 철길에서 반대 방향으로 내닫는 혹은 충돌하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치닫는 기차의 상태를 연출한다. 다양성 관리의 첫 번째 임무는 사회적 범주로 나눠진 차이가 서로에 대한 파국으로 종결될 것임을 인식하고, 이 둘을 직각으로 다시 엮어 새롭고 평평한 협업의 운동장을 만드는 작업이다. 협업의 운동장은 범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이를 새로운 씨줄과 날줄로 직조해 만든 새로운 태피스트리(Tapestry)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피스트리는 기존의 사회적 범주에 의해서 갈라진 세상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더 평평하고 더 기울어지지 않은 협업의 운동장이다. 다양성 관리의 사명은 이원론범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이를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 소멸시키는 일이다. 본 저서는 파트너로 사명과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더 높은 곳에 만들어진 더 평평한 협업의 운동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진화생물학이 주장하는 대문자 남성과 젠더 정치학자들의 패권싸움에서 이긴 사람인 대문자 여성의 감옥에서 여성과 남성이 같이 탈주하는 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적 탈주가 능력이 있지만 아직도 조직의 변방에서 소외된 다양한 소수의 다윗들을 결집시켜 조직이 설정한 미래에 대한 약속인 목적을 실현시켜 후세에게 유산을 남겨줄 수 있는 협업의 파트너십 개연성을 높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