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7-03 15:22
[N.Learning] 길은 깨어 흐르는 강물이다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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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깨어 흐르는 강물이다
윤동주의 길
강물은 잠자는 의식을 깨워가며 무한하게 평평한 바다로 흐른다. 우리가 걷는 각자의 길은 흐르는 강물이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처럼 어제를 거쳐 오늘을 걷고 있고 내일을 향해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흐르는 강물이 되지 못한 길은 우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잠자는 길이다.
윤동주의 깨어서 흐르는 길에 관한 두 편의 시가 쳇바퀴가 돌듯이 삶이 무료해질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제시하고 있다. 윤동주는 <새로운 길>에서 오래된 새 길임만이 온전하게 깨어 있는 길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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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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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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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매일 걸었던 길은 같은 길이지만 바람이 바뀌고 아기씨가 등장하고 꽃이 피고 지는 매일 다른 서사를 가진 온전한 새길이다.
하지만 윤동주도 가끔 길을 잃어 버려서 새로운 길이 나타나지 않을 때의 곤혹스러움을 <길>이라는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자기 삶에서 단절되어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을 때이다.
사람들이 길을 잃으면 분절적인 길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영광만을 노래하던지, 의미없는 현재 일에 자신을 중독시키든지, 아니면 미래의 희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윤동주의 길에서 저녁은 과거를 아침은 미래를 의미한다. 오래된 새길은 지금 걷고 있는 현재의 길에 과거와 미래가 온전하게 연결되어 흐르는 강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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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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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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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길을 잃고 나는 담벼락 저쪽에서 불안을 못이겨 서성이고 있다. 나의 삶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연결되어 있을 때만 온전한 길이기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내 길이 어디에서 끊어졌는지 질문을 던진다. 길을 잃었을 때 윤동주가 던진 질문이 바로 정체성 질문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결국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이 정체성 질문이다. 이 정체성 질문에 답을 얻었을 때 던질 수 있는 심화 질문이 자기정의 질문 self defining question이다. 자기정의 질문은 이런 과거 현재 미래의 맥락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가끔 길을 잃었을 때마다 길을 찾기 위해 자기정의 질문을 던졌다. 온 나라가 길을 잃었을 때도 온 국민이 촛불을 밝히고 길을 찿아나서며 자기 정체성에 관한 자기정의 질문을 던졌다. 이게 나라냐?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국회냐? 이게 판사냐? 이게 목회자냐? 이게 검찰이냐?
정체성에 대한 자기정의 질문으로 자신의 길을 제대로 발견하면 길은 다시 오래된 옛길에서 오래된 새길로 깨어나 자신 모습을 드러내가며 흐른다.
아침에 다시 산보에 나섰다. 비가 오니 산 안개의 운치가 더해져 새길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 가는 길이 나를 잠에서 깨우는 흐르는 강물 길이기를 기도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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