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 논쟁"이 시작은 정지운이 만든 「천명도」다. 1537년, 정지운은 『성리대전』에 있는 인간과 사물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요약하고 종합하여 『천명도설』을 저술한다. 정지운은 학자들에게 자신이 해석하고 그린 천명도에 대해 피드백을 요구했고 이황은 정지운을 만나 논의 끝에 『천명도설』의 일부 문구를 수정한다. 기대승은 이황에 의해 수정된 「천명도」를 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1559년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 반론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시작된다. 기대승과 이황은 1566년까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8년 간 논쟁을 이어갔다.
기대승과
이황은 서신을 교환하며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칠정(희, 노, 애, 구, 애, 오, 욕)의 관계를 이(理)와 기(氣) 개념을 통해 정립한다.
이황은 사단은 이(理)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氣)에서 발한다고 주장했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원론에 문제를 지적한다. 이황이 사망해 논쟁이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기대승은 이와 기는 논리적으로 나눠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이황은 기대승의 주장을 반영하여 “사단은 리가 발하면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면 리가 탄다”라고 수정한다. 아직도 이황의 주장이 이원론을 극복하고 있지 못함에 반발해 기대승은 "정(情)이 발할 때 리(理)가 움직여 기(氣)가 함께 하기도 하고, 기(氣)가 감동하면 리(理)가 따라오기도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기는 한 인간의 몸 속에서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하며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이성과 감정에 대한 논쟁은 서양 철학, 심리학, 뇌과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다. 플라톤은 이성을 강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과 정서 모두를 중시했다. 데카르트는 이성과 정서의 존재를 모두 인정했지만 이성이 정서를 통제한다는 이성 우위론를 주장했다. 이런 입장이 심리학에도 영향을 끼쳐 초기에는 감정이란 어떤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이성이 해석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이 주류였는데 현대 심리학에서 일방적으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창의성과 고차원의 윤리적 판단에서 감정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뇌과학에서 감성과 이성을 연구하는 대표적 학자는 아이오와 의과대학의 안토니오 디마지오다. 디마지오는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을 구별해가며 느낌은 밖에서 사건으로 촉발되는 감정과 달리 인간의 뇌, 몸, 정신이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는 독특한 내면적 주관적 체험이라는 입장을 세운다. 데카르트처럼 이성과 감정을 이원론적으로 나누고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기대승과 이황의 논쟁을 서양의 정서와 감정 논쟁과 연결시켜보면 성리학자인 이황은 인의예지신으로 요약되는 인간 이성의 우위를 염두에 두고 사단이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경으로 전개되는 철학을 주장했다면 기대승은 정서는 오로지 인간 내면의 작용이라고 주장한다. 기대승과 같은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안토니오 디마지오다. 안토니오 디마지오가 기대승과 이황의 사단칠정론쟁을 접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대승이 단연코 디마지오의 학문적 선배다. 그렇다고 이황이 데카르트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와 달리 이황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성자체라기보다는 이성에서 발원했지만 인간에게 내재적으로 발현되는 사단 내지는 경과 같은 도덕적 정서라는 입장이다. 이황은 데카르트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더 가깝다.
이황의 입장과 기대승의 입장이 꼭 대치되는 것은 아니다. 인의예지신이라는 이성의 통찰은 내재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밖에서 정신을 흔들어 깨우며 들어온다. 반대로 칠정이라는 것은 몸의 사건으로 외부에서 촉발된다. 정신을 깨우는 이성과 몸을 깨우는 감정이 밖에서 들어온다는 것이 이원론이 근거다. 문제는 정신과 몸을 깨우는 이성과 감정이 우리 몸에 이입되고 내재화 될 때의 문제다.
기대승과 이황의 사단칠정은 바로 이성과 정서가 이와 기의 형태로 몸으로 내재화 되었을 때 어떤 원리로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하는지의 논쟁이다. 이황은 인의예지신이 정서와 만나서 사단으로 만들어지고 칠정도 사단과 만나서 경으로 발현되어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제어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기대승은 몸 속에서 사단과 칠정이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어디에 방점을 두고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디마지오와 같은 견해다. 사단은 서양에서 고단위의 윤리적 정서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기대승과 이황 모두는 이성만을 중시하는 경향을 넘어서 정서의 중요성을 터득한 학자들이다.
사단칠정의 논쟁은 한 사람을 중심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맨토와 맨티의 인간관계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통합의 실마리가 풀린다. 맨토는 인의예지신이라는 이성과 목적으로 즐탁동시를 통해 병아리를 부화시키지만 부화를 위해 오랜 기간 알을 사단이라는 윤리적 정서로 따뜻하게 품어주는 과정을 전제한다. 인의예지신이라는 이성을 준비하고 사단이라는 정서로 품어주어 가며 알 속의 병아리가 충분히 성숙하기를 기다린다. 알 속의 병아리는 어느 시점에 자신을 꺼내 달라고 소리치고 이 소리를 듣고 어미 닭은 인의예지신으로 즐탁동시한다. 어미닭의 줄탁동시는 인의예지신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병아리의 내재적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맨토이자 어미닭의 입장에서 인간의 성숙을 논의한 사람이 이황이라면 알 속의 병아리 입장에서 성숙을 논의한 사람은 기대승이다. 정리하면 인간의 온전한 성숙은 밖에서 도와주는 어미닭과 안에서 소리치는 병아리의 협업을 통해서다. 아이가 있는 전통적 가정에서는 인의예지신의 줄탁동시는 아버지가 주로 하고 사단의 긍휼의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기대승과 이황의 이기이원론 혹은 일원론 논쟁은 인간의 성숙을 Outside In의 관점에서 보는지, Inside Out의 관점에서 보는지의 문제이다. 이황은 Outside In의 관점으로 보았고 기대승은 Inside Out의 관점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성숙은 Outside In과 Inside Out의 협업을 통해서다. 두 관점의 통합이 인간의 정서적 성숙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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