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목적
회사가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이 실적을 일의 목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적을 많이 내야 성과급도 많이 받고 성과급을 만이 받아야 행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적은 일의 결과이지 일의 목적은 아니다. 일에 제대로 된 목적이 있어야만 사람들은 일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열정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일할 수 있고 따라서 실적이라는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일을 하면 다 성과로 이어진다면 목적보다는 눈에 보이는 보상을 선호하겠지만 일이 성과로 이어지는 확율이 떨어지는 일반적 상황에서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지가 더 시급한 문제이다. 이 장애를 극복하는데 보상이 더 효과적일 것인지 일의 목적이 더 효과적일지의 문제이다. 물론 보상을 챙기기 위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지만 정말 큰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 일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이 경우 자존심과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원래 돈 때문에 한 일이라면 그냥 돈을 포기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돈 때문에 일할 필요는 없다고 자기 자긍심을 자위할 수도 있다. 자긍심을 살리는 문제로 장애를 접근할 때만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학습의 관점이 생기는 것이다. 학습은 장애를 제대로 극복하게 도와준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돈만보고 일정 기간을 일을 하다 보면 학습의 관점이 사라지고 요령만 챙기다가 자연적으로 실적이 부진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부진해진 실적을 채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즉 목적을 잃고 헤메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실적이 목적이 된다. 실적이 눈 앞에서 맴돌수록 일의 진정한 목적은 먼 나라 이야기이고 이때부터 빈곤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마른 수건 쥐어 짜도 더 이상 실적은 안 나오고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실적에 누가 되는 사람들의 순서로 잘리고 또 잘리고 잘린다. 결국 종착역은 뻔하다. 종업원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생존하던 회사가 스스로 문을 닫거나 엄청나게 나쁜 짓을 통해서라도 실적을 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까지 운영했던 잘못된 회사의 운영방법을 허심탄회하게 자복하고 지금이라도 회사의 사명을 복원해서 종업원들이 목적 지향적으로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심지어 시간단위로 실적이 그대로 나오는 공장근로자들에게도 일의 목적은 돈에 비유할 수 없는 큰 보너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