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2-20 12:50
[N.Learning] 가끔은 멈춰 서서 뒤를 보자: 아프리카 선교사 이야기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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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멈춰 서서 뒤를 보자:
아프리카 선교사 이야기
아프리카의 원주민과 선교사가 같이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뛰던 선교사는 뒤가 허전해서 멈춰 섰다. 뒤따라 오던 원주민이 저만치 서서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사고라도 났는지 궁금해서 선교사가 원주민에게 다가가 묻는다. 선교사는 원주민으로 부터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영혼이 우리를 따라 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워진 선교사는 원주민과 같이 영혼이 따라오기를 한참동안 기다렸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우상화 하여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최고의 삶으로 가르쳐 왔다. 앞만 보고 달리는 과정에서 99%의 사람들이 영혼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길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 아까워 그냥 무시하고 또 달린다.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멈춰 설 때 자전거가 쓰러질 것이라는 우려가 멈추지 못하는 결정에 한 몫 한다. 자본주의에서 남들보다 먼저 쓰러지는 모습은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된다. 쓰러져 쉬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 루저로 규정되면 달리기 명단에서 빼기 때문이다.
앞만보고 달리도록 훈련받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오염되어 영혼을 잃어버렸을 것 같은 성직자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심지어는 대한민국에는 기업가와 철학자가 공저자로 있는 초격차라는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 자리에 머물러 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따라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못 따라올 정도로 더 빨리 내 달려야 산다는 논리다. 이런 초격차 정신으로 내달릴 것을 주문하는 신자유주의는 성직자들에게도 스며들었다. 이들은 신앙의 질보다는 교인의 숫자을 채우기 위해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길은 복음이 이끄는 올바른 길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리를 앞세워 방해꾼들을 물리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절대 멈춰서지 말고 달리도록 명령한다. 성직자들도 달린다.
영혼을 뒤에 남겨놓고 내 달리는 삶은 우리에게 삶의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대신 삶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지만 정작 자신은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산다. 가끔은 멈춰 서서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 지를 돌아보는 것이 절실하지만 초경쟁사회는 멈춰서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은 영혼을 앞세워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삶의 방향을 잡고 따라가는 삶이 행복의 근원적 원천임 밝혀왔다. 실제로 영혼의 종소리를 들어가며 사는 삶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세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끔가다 멈춰 서서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주는 삶보다 더 근원적으로 행복한 삶은 차라리 영혼을 길잡이로 앞장 세워 따라가는 삶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사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영혼의 종소리를 따라가는 삶이란 자신만의 미션을 가진 진정성이 넘치는 삶이다.
아프리카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동행을 구하라"라는 속담이 있다. 120까지 살아야 하는 먼 길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동행이 필수적이다. 동행 중 가장 중요한 동행은 자신의 영혼일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더 못 뛰었을 것 같지만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게 뛴 한 해로 기록될 것같다.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따라오던 내 속도를 이기지 못해 시간은 12월의 막바지에서 헐떡거린다. 올해는 여기가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 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멈춰 서서 영혼도 기다리고 사랑도 기다리고 집 나갔던 추억도 기다려 이들과 동행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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