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씨가 <아침이슬>을 완성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서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뉴스 인터뷰에서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아침이슬을 작곡하다 막히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막히면 아침이슬로 돌아가 곡을 완성하려 해도 완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신 집주위 무덤에 떠오르는 자신을 환하게 밝혀주는 태양을 보고 계시를 받듯 <그>를 <나>로 바꾸게 되었고 그 순간 아침이슬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침이슬의 <나>는 완성되기 전에는 <그>였던 것이다.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 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우리 모두 삶의 모든 스토리는 대부분 3인칭 모범생 문법인 <그>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내가 실제로 수행하는 대부분 역할도 따지고 보면 다 삼인칭 모범생 문법이다. 부모님이 그랬어, 회사에서 본부장이 그러라고 했어, 목사님이 그랬어, 스님께서 법문으로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말했어, 친구가 그랬어, 어떤 위인전에도 나와 있어, 과학잡지에 나와있어, 유명한 자기계발서에 나와 있어 등등 내가 수행하는 역할 중 삼인칭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나는 삼인칭인 그가 써 놓은 내 역할에 대한 대본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연기자로서 남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는 것이다.

김민기씨가 운동권을 일으켜 세우게 된 동기는 아침이슬이 애국가처럼 불리기 시작하면서다. 아침이슬이 운동권의 애국가가 된 것의 비밀은 노래의 가사를 삼인칭 객체인 그의 내러티브가 아닌 일인칭 주체인 나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가 그에서 나로 바뀌는 순간 이런 압제에 대항해서 일어서야 할 사람은 객체인 그나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와 우리라는 사실을 각성한 것이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압제로 고통 받았지만 삼인칭 객체로 살던 젊은이들을 천둥번개로 일깨운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이들을 나라의 일인칭 주체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김민기는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긍휼은 넘쳤어도 본인은 학생운동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되고 이 여파로 자신의 모든 노래가 금지곡으로 전환되어 결국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노래를 끊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민기는 자신이 노래 부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금하고 동승동에 <학전>이라는 소극장을 세워서 무명가수와 무명 연기자들을 길러내는데 평생을 헌신했다.

학전(學田)은 벼를 길러내기 위한 묘판을 의미한다. 학전은 재능 있는 무명인을 키워서 번듯한 가수와 연기자로 만드는 것이 사명이다. 실제로 가수로는 전인권, 김광석,유재하, 강산에, 윤도현, 나윤선, 박학기, 박승화, 이은미가 이 묘판에서 성장했고, 지금은 전설이 된 <지하철 1호선> 뮤지컬을 통해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많은 무명 연기자로 묻혔을 사람들이 건실한 연기자로 태어났다. 학전이 시작된 1991년에 무명이었던 김광석이 혜성처럼 등장해 1995년까지 1000회연속 콘서트 기록을 달성했고, 1994년 초연한 <지하철 1호선>은 2023년 12월 31일 종연에 이르기까지 4258회라는 전후후무한 공연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도의 순수성이 아침이슬을 운동권의 마음 속 애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했고 이점에서 북한 김일성 가계가 주창하는 주체사상과는 격을 달리한다. 주체사상도 일인칭 주체임을 선동하고 강조하지만 그 숨겨진 의도는 북한주민과 한국의 주사파를 김일성 가족의 정치적 탐욕에 숙주로 동원하는 것이다. 김일성이 스스로를 주체사상의 대부로 선언하고 많은 사람들을 일인칭 주체로 치켜세워 가스라이팅하는데 성공해 세상을 오염시켰다면 김민기는 아픈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온전하게 키운 시대적 힐러(Healer)였다.

노장사상을 불교에 접목시켜 새로운 철학적 경지를 완성했던 임재선사는 "어디에 가든 순수한 의도를 가진 일인칭 주인공의 삶을 살면 사는 것 모두가 진리로 실현될 것이다(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라고 조언했다.

삶의 문법이 <삼인칭>인 그의 문법에서 우리가 전제된 <일인칭> 문법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진정성 있는 주체적 삶은 가능하지 않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배워도 이 새로운 것이 일인칭으로 전환된 내러티브가 되어야 자신 세상을 보는 지도인 정신모형에 업데이트 된다. 운전대를 남에게 넘겨준 삼인칭 삶으로는 자신이 운용하는 지도의 해상도를 높일 방법이 없다. 삼인칭 지식이 아무리 많아져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한 존재목적 실현을 열망하는 일인칭 내러티브는 자신 삶의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붓이자 지도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김민기 선생은 지금 암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치유하고 일으켜 세우신 것처럼 당신께서도 치유의 기적을 허락하셔서 다시 일어서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