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지금까지 성장해오면서 많은 스승들의 도움이 있었다. 어려운 국면마다 줄탁동시를 해주셨고 알에서 깨어나도록 도움을 주셨다. 스승님을 통한 N번의 새로운 탄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의 정체성이 있을 리 없다.

생전에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스승이신 분들도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한 분이 2016년에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린 학생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소재로한 <청구회의 추억(2008)>을 통해서다. 이 이야기는 실화로 선생님과 한 무리의 소년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통혁당 사건의 사형수로 감옥에 투옥된지도 모르고 선생님과의 만남에 기분이 들떠 있던 어린 소년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선생님을 만나러 가지만 결국 선생님의 소식을 모른 채 황망하게 기다리다 지쳐 돌아간다. 나는 소년들 이야기에서 시대의 어른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소소한 교류를 가로막는 시대의 비극과 폭력의 문제를 놓치고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 신영복 선생님은 아이의 스승이기를 넘어서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는 교학상장을 실천하고 있었다.

과연 이 역사적 비극이 일상으로 치닫는 이 현장에서 나는 도대체 앞으로 리더로 성장할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을 베풀고 아이들을 스승으로 삼아서 어떤 배움의 배고픔을 채울 수 있을까라는 교학상장에 대한 화두는 내 정체성의 중심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연구하는 경영학이 인문학과는 너무 동 떨어져 있어서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뵐 기회는 없었지만 책을 통한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가 한국에서 리더십 바로 세우기 운동인 진성리더십 운동을 시작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리더와 구성원들 서로의 머리와 가슴과 다리가 존재론적 관계론적 실천론적 집단지성적으로 온전하게 통합되고 연결될 때에만 세상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진성리더십의 원리는 신영복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더 정교화 될 수있었다. 다양성은 항상 변방 사람들에 대한 긍휼감의 문제이고 변방 사람들의 고통 해결을 위한 근원적 변화에 대한 생각은 <백년기업의 변화경영>에서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선생님이 즐겨 암송하시던 민영규 시인의 <지남철>이라는 시는 진성리더십의 핵심인 진북의 개념을,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라는 긍휼감에 대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감옥조차 대학으로 생각하시고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노력은 진성리더의 학습하는 죄인의 개념을, 석과불식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진성리더십에서 운명을 공유하는 생태계의 공진화 개념 정립에 도움을 주었다. 20년 간 감옥에서의 성찰적 대화가 깊은 뿌리가 되어 이렇게 큰 열매를 맺었다는 생각은 학자로서 학문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리더십 바로 세우기 운동인 진성리더십(Authentic Leadership) 이념은 더 높은 곳에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한 공의의 운동장(Ground Place of the Righteousness)을 세우고 이 운동장에서 모두가 주인이자 리더로 생생지락 하는 리더십의 민주화를 꿈꾼다. 리더십이 민주화된 세상에서는 공유된 목적을 실현하는 일에 누구나 스승이고 누구나 제자로 나설 수 있다. 이 운동장에서는 360도 맨토링과 360도 코칭을 통한 성장과 학습이 일상이다.

얼마 전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의 진성부모 연구회는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스승이 되는 길을 제시한 <자녀가 최고의 스승이었다>를 공동저술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뜻을 살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리더십이 민주화 되는 세상을 꿈꾸며 선생님이 남기신 교학상장의 악보를 연주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교학상장을 위해 나서주신 모든 스승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