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다.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그 가치는 어떻게 측정할까?

실제로 학자들은 신뢰와 믿음의 정도를 믿음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상처 받을 수 있는 지(vulnerability)의 정도로 측정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나에게 천 만원을 빌려 달라고 했을 때 못 받을 것을 각오하고 천 만원을 빌려준다면 친구와 나 사이 신뢰의 잔고는 천 만원이다. 천 만원의 범위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얼마든지 상처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주가는 회사의 미래 가치에 대한 믿음이다. 실제 주가는 회사의 미래 가치를 현재 현금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주주들이 보이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믿음은 주가 변동에 맞춰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매각할 지의 결정에 반영된다. 만원이었던 주가가 만 오천 원으로 올라 남들은 다 판다 해도 자신은 팔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오천 원 만큼 회사의 미래 가치에 더 믿음을 가지고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은 손해 보고 팔아도 더 손해 볼 수 있음에도 안 팔고 있다면 더 손해 볼 개연성 만큼 회사의 미래에 신뢰가 있는 것이다.

회사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믿음도 브랜드 제품 때문에 고객이 상처 받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아이폰의 현재 가격이 100만 원인데 애플에서 마지막 가격 저항선인 150만 원까지 올려도 고객들이 떠나지 않다가 151만원으로 올렸을 때 떠났다면 아이폰의 브랜드에 대한 믿음은 50만원이다. 삼성폰이 100만 원인데 가격을 160만 원까지 올려도 고객이 손해를 감수하고 삼성폰을 산다면 삼성폰의 브랜드 가치는 60만원이다.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정도다. 브랜드 가치의 범위 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 없이 미래를 위해 마음 대로 실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런 실험이 가능한 회사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성공한다.

고용 브랜드 가치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경쟁사가 현 연봉에 플러스 1000만 원의 연봉으로 스카웃을 제안해도 현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면 종업원이 회사의 고용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 1000만 원이다. 1000만 원의 범위 내에서 종업원은 회사 때문에 순간적 손해를 당해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런 고용 브랜드를 가진 회사는 고용 브랜드가 없는 회사에 비해 리스크가 있는 미래를 의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큰 믿음과 신뢰의 실험 공간을 얻는다.

믿음과 신뢰란 미래의 가치를 정했을 때 더 나은 대안이 떠 올라도 이 대안의 가능성이 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회비용 포기에 따른 상처의 개연성을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탐하지 않고 가치에 대한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는 자신에 대한 신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군가가 내 이름과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모두 포기하고 유령처럼 사는 대신 10억을 준다고 제안할 때 이 제안에 넘어간다면 내 브랜드 가치는 10억이다. 천 만금을 준다고 해도 유령처럼 살지 않겠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자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모든 결정에서 온전하게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위해서 헌신한다.

믿음의 산실인 종교의 브랜드 가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기독교인에게 얼마를 주면 기독교인을 포기하는 상처를 감내할 것이냐고 흥정하거나 불교 신자에게 비슷한 흥정을 할 때 제시된 가격 저항선이 믿음의 브랜드 가치다. 많은 기독교인이 가나안 성도로 전락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제안을 해온다면 적은 금액을 제시해도 대부분이 수락할 것이다. 더 이상 종교가 믿음을 팔 수 없는 시대다. 아브라함이 유대교, 기독교, 이스람교를 넘나들며 믿음의 조상으로 등극한 이유도 늦은 나이에 얻은 자신의 분신인 아들을 번제의 재물로 포기하는 상처까지 감내해가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의 미래 가치를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의 범위 내에서는 절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크기는 믿음의 강도를 넘어 믿음을 통해 실현하려는 보이지 않는 실상인 존재 목적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된다. 인간은 존재 목적이라는 나침반을 포기하지 않고 이 나침반이 이끄는 지도에 따라 종착지에 도달했을 때 유산을 남긴다. 존재 목적을 실현해 얻어낸 유산이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다. 우리는 믿음을 가졌을 때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어떤 어려움과 상처를 감내해가며 보이지 않는 실상이었던 존재 목적을 보이는 실상인 유산으로 만들어낸다.

유산으로 실현할 존재목적도 없는 사람이나 기업이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근거 없는 망상을 가진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만이 근거 있는 자신감의 기반이 된다. 현재의 가치를 결정해 주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존재목적이 없는 사람이나 기업이라면 이들에게 높은 브랜드 가치와 고용 가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