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교회가 텅텅 비어가는 현상은 신념의 죽음 혹은 믿음의 제도화를 상징한다.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 대다수가 크리스마스를 가장 큰 명절로 여기지만 실제로 이들 중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 겉으로 보기에는 과학의 이성과 종교의 신념의 대결에서 종교가 점점 수세에 몰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점진적으로 죽음을 당하는 현상이 한국 교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통계는 일관되게 지금 한국에서 전통적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급감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세대별 분석을 보면 더 비극적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현실적 중추에 해당하는 30-40 세대가 교회에서 이탈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 2022년 조사).

최근에 대표적 무신론자인 석학 4명이 과학과 기독교와의 싸움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대담집 <네 명의 흑기사 Four Hoursemen>을 출간했다. 책에서 자신들을 요한복음에서 세상에 종말이 왔을 때 나타난다는 네 명의 흑기사로 비유했다. 이들의 대담 내용을 들어보면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의 종교가 과학과의 싸움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고 이를 통해서 어떻게 종교적 영성을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이들의 주장 중 가장 핵심적 주장은 종교의 자기방호성의 문제이다. 이들은 이성적 과학과 신념의 종교 사이의 차이를 자기 방호성의 측면에서 비교한다. 과학은 자기방호성이 없다. 사실이 드러나면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종교적 신념은 신념에 반하는 사실이 드러나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고 다른 사실을 끌어들여 가면서라도 신념을 지키는 작업에 몰입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크리스티앵은 속 좁고 편견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결국은 이러는 과정을 통해 종교는 신념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켜 사망 당하는 운명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에는 사실에 근거해 신념의 수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배교자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가해 죽음이 이르게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념과 이성이라는 이원론적 주장을 반대한다. 종교는 종교로서 제대로 된 신념의 안경을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정신세계에 대한 통찰과 긍휼감의 원천을 제시해 왔다. 과학은 지식의 진보를 통해 우리가 아는 객관적 세상을 업그레드해왔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서로를 강하게 만드는 스파링 파트너 관계로 설정하는 것이 맞다. 종교가 과학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과학이 실천하는 겸양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금까지 사실이라고 믿어온 주장을 기각하는 다른 객관적 사실이 드러나면 그냥 쿨하게 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임을 통해서 과학을 진화시켜왔다. 종교가 스파링 파트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과학이 진화시킨 사실을 기반으로 미래에 대한 물꼬를 만들어 더 공의로운 운동장을 현재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과학자들의 생각하는 것처럼 과학이 미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미래의 기반을 제공할 뿐이다. 과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미래를 공진화 시킨 힘은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을 협업에 동원하는 믿음과 영성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학의 물꼬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조정하는 믿음과 영성을 가져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울타리와 실험실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인류의 진보가 가능했다.

이원론에 근거해 과학을 제압해야 종교가 산다는 잘못된 창조과학에 대한 믿음이 스파링 파트너의 역할과 지위를 망각하게 만들었다. 종교는 어떤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근본주의적 이념을 앞세워 십자군 전쟁을 벌인다. 9.11이 발생하자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의 근본주의가 충돌해 전쟁에 돌입했다. 이들은 각자의 주장을 지키기 위한 십자군 전쟁에 몰입한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대부분의 전쟁은 자신의 신념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신념 간의 십자군 전쟁이었다.

최근에 저술한 <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끈 기적>와 <초뷰카시대 지속가능성의 실험실>에서 본인은 죽음을 자초하는 믿음과 번성의 기반이 되는 믿음의 비밀을 분석했다. 믿음은 변화하는 세상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제대로 된 안경을 제시하지 못할 때 점진적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새로운 영성과 통찰력의 스파크를 제시하지 못할 때 자신들이 만든 믿음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감옥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믿음을 진화시켜 믿음을 살려내는 기제를 공진화라고 규정했다.

공진화의 여부는 두 가지 난제를 제대로 극복하는 지에 달려있다. 첫째 난제는 종교가 세상이 새롭게 발전해 더 이상 통찰력의 스파크를 만들지 못하고 자신이 믿음의 감옥인 아포리아의 감옥에 갇혔음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문제다. 아포리아는 지금까지 받아들였던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이전처럼 작동되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다른 난제는 아포리아를 벗어나 사막여행을 통해 새로운 믿음의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디아스포라의 여행이다. 이 여행을 통해 믿음을 새롭게 공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의 문제다. 아포리아에 대한 각성과 디아스포라의 여행을 통해 믿음을 성공적으로 진화시켜 믿음을 통해 새로운 번성을 구가할 수 있는 플랫폼과 지도가 제시될 때 믿음은 점진적 죽음에서 기사회생한다.

실제로 교회와 한국사회의 중추였던 30-40대가 왜 교회로부터 이탈하는지를 조사한 조사에서(지앤컴리서치 2023년 9월 조사), 이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이유는 교회가 ‘시대 흐름을 좇아가지 못함(30%)'이 1위이고,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적인 태도(28%)’가 2위,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 불일치 삶(26%)이 3위다. 아포리아를 탈출하지 못하고 과거에 정체된 교회 문화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교묘하게 교회 지도자에 대한 순종으로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는 태도, 진정성이 사라진 신앙을 문제 삼았다.

살아 있는 영성인 믿음이 없다면 사고의 근육이 없는 것이어서 과학이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이것으로 실질적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 좋은 믿음에 대한 종교적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문명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과학의 아버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따르면 자본주의도 기독교적 영성과 삶이 서로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만들어낸 결과이다. 기독교는 그 당시 자본가들의 삶에 영성으로 개입해 금욕주의를 통한 자본의 축적을 만들어냈다. 기독교는 영성이라는 드라이버로 앞에서 금욕적 생활과 직업에 소명의 스파크를 만들었다. 기독교의 영성이 금욕과 소명이 있는 직업을 통해 자본 축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든 결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붐을 일으키고 자기조직적 원리를 만들어서 스스로 거대해지자 정체된 기독교는 더 이상 자본가들에게 영성의 스파크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 틈을 타서 주주를 위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신자유주의 원리가 초기 자본주의 영성의 스파크를 대체했다. 새롭게 전개되는 자본주의 세상에 영성을 제공하지 못하자 역으로 교회가 신자유주의 성장주의에 교화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교회는 영성이 아닌 크기를 키우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아서 자본주의의 전략 경영기법을 동원해 교인수 늘리기 경주에 몰두해왔다. 모든 사회 영역에서 영성과 삶의 스파링 파트너 관계가 무너진 것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재앙의 실체다.

신자유주의를 추동하던 경기가 지금처럼 L자 경기로 꺼지자 자본주의는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갉아 먹는 우로보로스 현상을 가져왔다. 우로보로스는 배가 고프면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으로 영역을 가리지 않고 사회를 양극화 시키는 주범이다. 교회도 사회처럼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잡아 먹는 오로보로스 현상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현실이자 극심한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변화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과 믿음이 주는 영성의 스파크를 통해서만 완성된다.

문제는 믿음의 방어기제적 속성에서 파생한다. 종교도 방어기제를 벗어나 과학처럼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을 때 진리의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사실에 맞춰 진리를 해석하고 진화시키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존의 믿음이 새롭게 전개되는 세상에서 우리를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우리를 장님으로 만들고 있다는 피드백들이 들어오면 죽음을 무릅쓰고 기존의 믿음을 지키기보다는 이 믿음을 공진화시킴을 통해 믿음의 본질을 살려내는 겸양이 요구된다. 살아 있는 믿음만이 영성이 되어 살아 있는 나침반처럼 세상을 향해 항상 떨림을 유지해가며 스파크를 준다. 영성의 떨림이 없는 나침반은 죽은 믿음의 부러진 나침반이다.

결국 종교는 과학적 이성과의 싸움에서 패배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겸손함을 유지하지 못해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굶어 죽을 개연성이 더 높다. 종교가 과학으로부터 배워야할 점은 믿음을 공진화 시키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겸양이다. 종교가 사라지는 이유는 과학 때문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겸양부족 때문이다. 교회는 과거의 성공과 성경 문자주의에 빠져 변화한 세상에 스파크를 줄 수 있는 영성의 진화에 실패한 것이다. 시대에 맞게 영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진화시켜 영성의 스파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믿음은 이미 사망선고를 당한 것이다.

종교보다 자본주의는 세상 물정에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9년 8월 19일 미국의 전경련인 BRT에 미국의 대표적 기업들의 총수들이 모여 신자유주의의 사망을 선고했다. 기업은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한 공동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기업 다운 기업이란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한 결과로 이윤이 따라오게 만드는 기업이라고 사명 선언문을 바꾸었다. 기업의 영성이자 존재목적을 드라이버이자 끌개로 이윤을 강화제이자 밀개로 다시 규정한 것이다. 모든 번성의 공통 원리는 사명을 드라이버로 세우고 사명을 현재의 삶 속에서 실현시켜 세속적 이득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기독교가 근원적 변화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영성의 독점적 생산자였던 교회가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BRT에서 배워야 할 입장이다. 니체도 오래 전에 지적했듯이 교회의 권위로 포장해 일방적으로 전수 받던 우상화된 하나님은 현대인의 마음 속에서 오래 전에 사망선고를 당했다는 것을 용기 있게 인정해야 할 시점이다. 교회가 가르쳐온 순종과 불순종의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주체적 단독자로 설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마음 속 영성을 부활시킬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다. 성경 문자주의와 교회의 율법적 권위에 종속되어 주체적이고 고유한 영성을 부활시키지 못한 사람이 삶의 근원적 변화를 체험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