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공장의 공장장이자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회장 이창준)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장인 김경묵 디자이너가 최근에 발간한 <이도 다이어리>를 읽으며 세종의 리더십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 대해서 주는 성찰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버지
태종이 앞에서 나를 따르라는 고전적 군대 리더십의 정수를 보였다면 세종은 아버지가 만들어준 기반을 플랫폼으로 전환시켜 백성이 주인이 되어 생생지락하는 국가로 새롭게 디자인했다. 세종이 발휘했던 리더십은 태종과는 정반대인 섬김의 리더십이다. 조선시대 우리에게도 이런 성숙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인 군주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진성리더였을까? 어떤 리더십 스타일이든 거기에 진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진성리더십이 요구하는 세 가지 기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목적에 대한 진정성, 둘째는 구성원의 아픔에 대한 긍휼감이고, 셋째는 구성원을 주인으로 세우는 협업의 운동장을 설계했는지의 문제다.
세종의 왕으로서 존재이유는 백성이 생업을 즐겨가며 배 곪지 않고 생생지락 해가며 춤출 수 있는 조선을 만드는 것이었다. 세종이 살아생전에는 자신에게 약속한 나라를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런 존재목적을 염두에 두고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과학 기술의 기반을 설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리더로서 세종의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과 헌신은 부정할 수 없다.
세종이 만들어낸 모든 발명품은 백성에 대한 긍휼이 혁신 행동으로 발현한 것이다. 긍휼은 아픔에 대한 위로를 넘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 행동과 제도적 틀을 만드는 일까지 할 수 있는 근력의 문제다. 이런 근력은 진실한 사랑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은 백성들이 한자라는 글을 몰라서 당하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세종이 만든 모든 제도는 백성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한 시인발정(施仁發政)이다.
시인발정이란 맹자에 나오는 발정시인(發政施仁)을 거꾸로 쓴 것이다. 발정시인은 답을 군주가 정해 놓고 이상적 제도를 만듬을 통해서 어짐을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철학이다. 백성을 주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시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철학이다. 세종의 시인발정이란 백성을 나라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긍휼감을 토대로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백성의, 백성을 워한, 백성에 위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치라는 의미다. 세종의 잘나가는 백성이 아니라 잘나가지 못하는 더 아픈 백성에 대한 긍휼의 시선을 잃지 않았고 이들을 문제해결의 공동 파트너로 삼았다. 심지어 노비의 출산과 육아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100일의 유급 출산휴가를 허락하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세종이 만든 모든 제도는 백성의 아픔을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시인발정을 실천한 것이다.
협업의 운동장에 대한 생각은 여민사상을 실천하는 일에 잘 드러나 있다. 리더로서 먼저 말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백성의 고통을 먼저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주의 깊게 듣고 문제에 대한 해결은 백성이 서로 주인이 되어 협업으로 해결하는 상태를 이상적 상태로 삼았다. 세종은 답을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에 대해 묻고 듣는 왕의 전형이었다. 아마도 세종이 살아 생전 가장 많이 했을 법한 말은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백성과 신하를 나라의 주인이자 협업의 동반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종이 기초를 마련한 조선에서는 최소한 나라가 백성들을 주인으로 세우고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목적과 긍휼의 나침반이 작동되는 나라였다. 이런 점에서 세종을 진성서번트 리더십의 전형으로 세우는 것에 큰 문제가 없지만 리더로서 실패도 있다. 리더로서 세종의 가장 큰 실패는 자신이 토대를 만든 조선을 수성할 수 있는 후계자를 키우고 세우지 못한 승계의 실패다. 이것은 능력이 아니라 혈통을 중심으로 왕권을 이어받아야 하는 조선이 감내해야 할 숙명적 과제이기도 하다.
세종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조직해가야 하는 정치 리더들에게도 성찰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리더는 국민들 중 더 힘없는 국민들이 가진 아픔에 대한 긍휼감이 있는가? 국가의 생산적 미래를 조직할 수 있는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과 헌신은 있는가? 진심으로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세우고 이들이 생생지락할 수 있는 협업의 운동장을 설계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통한 통과하지 못하는 리더에게 리더십이 잘못 승계되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어떻게 전향적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이 책은 심폐 소생술이 요구되는 대한민국을 다시 부활시키는 일에 관심을 둔 청년 정치가들이 먼저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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