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기간에 희말라야를 보고 지금까지 우리는 비전이란 말을 참 세속적이고 우리 편의적으로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비전은 종종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갸지고 있다.
가장 통상적 의미로의 사용은 앞으로 달성해야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큰 목표라는 생각이다. 히말라야 16좌를 하나 하나 정복하다보면 결국 16좌를 완등할 것이라는 생각에 첫 좌를 등정하는 것을 비전으로 설정한다. 첫 비전의 설정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장대한 목표지점이다. 귀납적 사용법이다.
둘째의 의미는 최종 목적지인 사명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게된 새로운 눈으로 본 세상이라는 의미이다. 16좌의 등정을 마쳐야만 하는 등반가로서의 사명에 대한 진실된 믿음을 얻게 되면 이 믿음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제공한다. 이 마음의 눈으로 새롭게 발견한 새로운 세상이 비전이다.
큰 목표로써의 비전의 달성은 실제로 현실이된 장대한 목표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줄 수 있어서 달성한 사람의 가슴을 충분히 흥분시키지만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관조할 때 얻을 수 있는 통찰럭을 제공하지 못한다. 앞 만보고 전력질주할 것을 강요하는 이 비전은 달성했을 때 자신에 대한 자만심과 기고만장과 허영의 기반이 되어 최종 목적지로부터 반드시 탈선하게 한다. 이 비전은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에서 자신을 토끼로 전락시킨다.
반면 사명의 목적지에 반드시 도달하겠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도달한 첫 목표 지점의 등정은 등반가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설사 실패를 해도 이를 실패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또 한번의 학습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희말라야 16좌 등정을 16번의 성공과 실패라고 생각하기보다는 16번의 학습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큰 목표를 비전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희말라야 몇 좌를 정복했다고 떠벌리겠지만 목적지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본 세상을 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산과의 교류를 통한 겸허한 학습과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엄홍길대장이 목적지에 대한 사명의 눈으로 개안하지 못했었다면 하늘은 그에게 이 장대한 비전을 달성하는 것 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큰 목표일 뿐이지 비전은 아닐런지 모른다. 눈에 보이는 큰 목표는 눈에 보이는 만큼만을 가져다주어 결국 우리 눈을 멀게한다. 비전이 없는 목표가 위험한 이유이다. 반면 비전의 목적지에 대한 사명이 가져다준 비전은 세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목적지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를 탈선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