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육성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중견기업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직원들 중에는 회사에서 리더로 키우기 위해 코칭도 하고 회사의 비전도 보여주고 하면 여기에 즉각 반응하여 리더로 성장하는 구성원도 있는 반면 오랫동안 비전닝 작업을 하였음에도 이런 노력에 반응을 하지 않는 구성원이 있어서 좌절감을 느꼈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경력개발의 맥락에서 같은 질문을 다른 회사의 HR 임원들에게 받은 경험을 말씀드렸다. 내가 제시한 경력개발은 줄탁동시에 기반한 개별 맞춤형 원리다.

줄탁동시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알에서 부화시킬 때 쓰는 방법이다. 병아리가 충분히 성장하여 알 속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병아리는 비로소 어미닭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면밀히 듣고 기다리던 어미닭은 병아리가 보내는 신호에 맞추어서 병아리와 함께 알을 깨는 작업을 도와준다. 결국 어미닭과 병아리가 같은 시각에 알의 같은 장소를 깨는 작업에 성공하면 병아리는 건강하게 태어난다.

줄탁동시의 핵심은 병아리가 충분히 성숙해서 알 속 공간이 자신을 담기는 너무 비좁다는 것을 각성하고 어미닭에게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성급한 마음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병아리가 들어있는 알을 어미닭이 먼저 깨면 병아리는 그냥 죽게 된다. 제대로 알에서 깨는 작업의 주도권은 병아리에게 있고 이 병아리의 요구를 받고 어미닭이 행동에 나서는 것이 순서이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충분히 자랄 때까지는 어미닭은 알을 깨는 일보다는 알을 충분히 더 품어주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내가 회장님께 줄탁동시의 고사성어를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회장께서 말씀하신 병아리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같으니 회장께서 먼저 알을 깨서 병아리를 부화시키려고 하시지 마시고 회사라는 알 공간에서 자신의 일의 전무성을 통해서 충분히 성장할 수 있게 더 품어주라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회사의 비전이나 사명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일을 통해서 자신이 충분히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성장판을 깔아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이슈라고 조언했다. 구성원이 일이라는 성장판을 통해 전문성이 신장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가치가 처음에 전문성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보다 효율성이 떨어짐을 깨달게 될 시점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아마 이때쯤 되면 본인이 알아서 회장님께 한 수 가르쳐달라고 더 큰 그릇을 만들어달라고 알에서 깨게 해달라고 신호를 보낼 것이니 그때까지는 그냥 알 속에서 리더가 아닌 더 성숙한 병아리로 성장하게 품어주라는 조언을 드렸다. 구성원들이 일을 통해 전문성이 신장될 수 있도록 알을 품어주는 능력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조언을 드릴 수 있었다.

회사의 구성원마다 맡아온 일과 학습 받아온 환경의 차이 때문에 성장에 대한 속도나 성숙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대부분 회사의 경력개발 프로그램은 년차가 같으면 똑같은 성숙도를 가졌을 것이라고 가장하고 경력을 제조업 방식으로 찍어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었다. 구성원의 성숙도와 성장속도를 개념하지 않고 획일적이고 평균적인 경력개발프로그램을 만들어 회사가 어미닭이 되어 연차에 맞춰 일률적으로 줄탁동시를 해왔다. 이런 평균을 강요하는 제조업 방식의 경력개발 프로그램에 소수의 인원은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인원은 견뎌내지 못하고 회사가 만들어 준 경력개발자체를 포기하는 직원들이 생겼다. 특히 여성 등 소수의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은 이런 평균적 경력개발 방식의 최대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평균의 폭력이다.

성장체험을 통해 경력을 개발시키는 것은 평균에 기반한 프로그램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종업원이 자신의 성숙도를 다양한 각도에서 측정할 수 있게 도와주고 회사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하게 만들어야 한다. 회사는 구성원의 요청에 따라 성장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맞춤형으로 해결해줘야 맞다. 지금까지 리더십 프로그램 등 모든 경력개발 프로그램은 직급이나 직책의 평균에 맞춰서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이 구성원들을 길러낼 수 있다는 믿음에 갇혀 있었다. 답이 정해진 시대는 이런 프로그램도 가동되었는지 모르지만 답을 만들어내는 근력이 필요한 시대에 경력개발은 제조업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회사의 방향에 맞춰 자신의 전문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이것을 충족시켜주는 개별화된 경력프로그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고급 관리자로 클 수 있는 구성원들의 경우는 이런 개별 맞춤형 경력관리가 특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PS: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부모가 억지로 자식을 먼저 부화시켜 대학에 입학시킨 학생들은 자기주도력이나 생각하는 근력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