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박사공부를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박사를 통해서 이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주제에 대한 질문을 가졌을 때 박사를 시작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내가 박사를 시작할 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시작했는지는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파급력이 큰 좋은 논문을 쓸 때의 시작은 항상 좋은 질문이 이끌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의 경우 파급력이 큰 학술 논문으로 이어진 좋은 질문은 다른 사람이 실패했다고 포기한 데이터의 재분석과정을 통해서 얻어졌다. 주로 계량적 모형을 다루는 논문을 주로 써온 입장에서는 어떤 가설을 설정하고 이 가설에 따라 자료를 수집하면 이론적으로 탄탄한 기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가설에서 예측한 결과대로 나오는 경우가 없다. 서베이 데이터의 경우는 변수도 많고 임의로 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아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로 실험 연구를 많이 해온 본인의 입장에서는 결과가 예측대로 나오지 않으면 효율성을 따지자면 그냥 다시 데이터를 처음부터 다시 수집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좋은 질문은 누가봐도 실패했다고 포기한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는 경우를 통해서 얻어진 경우가 많았다. 별로 분석할 여지가 없는 데이터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을 하고 다시 수백번 분석을 하다보면 다음 데이터나 이론을 어떻게 설정해야하는지의 좋은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이런 과정을 통해 동고동락을 같이 하던 연구동료들끼리 후배들에게 전수할 조언을 만들어냈다. 실험 데이터라하더라도 이 데이터 속에 숨겨져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놓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데이터를 두드려 패보면 데이터 속에 꽁꽁 숨어 있던 진실이 견디지 못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배운 진리다. 이 교훈을 후배들을 훈련시킬 때마다 들려주었다. 데이터가 답을 보여주지 않을 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면 이 데이터는 진실로 이르는 질문에 대한 힌트를 보여준다. 이 힌트를 가지고 질문을 던져 이 질문에 답을 얻으면 더 좋은 이론이 만들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수집한 데이터도 대성공이었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데이터의 숨겨진 아포리아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연구자의 몸부림의 극단을 보여주면 아포리아를 벗어날 수 있는 질문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생을 바꾸는 근원적 질문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삶을 바꾸는 근원적 질문은 가만히 앉아서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주어진 삶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경우는 떠오르는 질문이 항상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어진 삶에 대해 불만을 토하기 보다는 불만스러운 삶이라도 이 삶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살아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다보면 자신이 성숙해지고 이 성속을 통해 자신이 자신이 알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직면해서 이 알을 어떻게 깨고 나와야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이 바로 인생을 바꾼 질문이 되었다.

자신이 주어진 삶에 불만을 토하고 남을 비난하는 삶을 살 때 내가 던진 질문은 결국 보채기만하는 어린이가 던지는 질문의 수준을 벗어나기 못했다. 삶을 바꾸는 근원적 질문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했어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전환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암울한 삶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받아들인 삶 속에서 자신을 성숙시키려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파생되었다. 암울하더라도 자신이 처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해서 스스로를 성숙시키면 자신이 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고 이 알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질문이 근원적 질문이 되었다. 또한 이 근원적 질문의 망치를 통해 알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즐탁동시의 경험처럼 알 안에서 벗어나려고 처절하게 노력을 하다보면 밖에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맨토들이 알을 깰 수 있는 질문을 넘겨주기도 했다. 근원적 질문은 현실을 긍정하고 현실에 부닥쳐가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매사에 불만이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병아리가 불쌍해 어미 닭이 밖에서 알을 깨어 답을 주면 병아리는 죽는다. 많은 창의적 젊은이들이 부모나 선생이 만들어준 답을 답으로 알고 근원적 질문을 마련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갔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생의 진로를 바꾸는 질문은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