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man Show라는 고전적 영화에서 한 평범한 보험회사 샐러리맨이었던 트루먼 버뱅크의 이야기는 기존의 정신모형을 버리고 심리적 안정지대를 벗어나는 일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인가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트루먼은 Sea Haven이라는 그림 같은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도 있고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같이 마실 수 있는 절친한 친구도 있다. 안정된 직장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30년간 매일매일 방영되어 왔던 리얼리티 쇼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트루먼은 섬을 탈출하기로 결정한다. 목적지는 자신의 첫 애인이 살고 있는 피지라는 섬이다. 문제는 트루먼이 물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아버지를 잃은 아픈 과거가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탐험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트루먼은 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섬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결국 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탈출에 대한 꿈이 더 커져버린 트루먼은 요트를 타고 섬을 빠져나간다. 트루먼 쇼의 연출가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탈출사실을 알고 공포를 통해서 제압하려고 한다. 인공파도와 거친 폭풍우 등을 이용하여 트루먼을 익사직전까지 몰아넣지만 트루먼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공세트의 끝에 도달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비상구 앞에 선다. 이때 제작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에게 경고한다. “밖의 세상은 Sea Haven처럼 안락하지도 않고, 범죄와 불행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에도 트루먼은 비상구를 열어 더 이상 조작되지 않고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세상으로 과감하게 걸어 나간다. 트루먼이 자신만의 안락한 정신모형을 버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향해 요트를 몰기 시작했을 때 느끼는 공포가 정신모형이 보장해 주는 심리적 안정지대를 포기할 때 감내해야 하는 공포인 것이다.
변화란 안락하고 편안했던 기존의 정신모형이 지정해 준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의미하고 이는 흥분보다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요즈음의 광고 카피 제목처럼 많은 불편과 고생을 예고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하지 말아야 할 많은 변명과 이유를 만들어 낸다. 그 변명과 이유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다 실패나 하지 않을까? 혹시 실패라도 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새롭게 변한 상황에서 기득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미지의 세상에서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지금도 괜찮은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생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고통스럽지나 않을까? 변명이야 이처럼 다양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변명들의 뿌리는 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의존해왔던 정신모형에서 탈출하는 것의 두려움이다. 낡은 정신모형은 한편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사람들이 낡은 정신모형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세상이 변화했는데 낡은 정신모형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가라앉을 운명의 배와 생사를 같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