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8-22 21:47
[N.Learning] 한국 워라벨의 문제점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5,913  

한국기업이 생각하는 워라벨의 문제점:
제도냐? 문화냐?

미국에서도 워라벨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추심회사의 사례를 들어보자. 아래에 제시된 하브리지가 설립한 추심회사와 하브리지가 이전에 근무했던 추심회사를 비교해보자. 지금은 두 회사 모두 제도적으로는 똑 같이 워라벨을 준수하는 회사이다. 여러분은 어떤 회사에의 워라벨이 여러분에게 지속가능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는가?

워라벨의 목적은 정해진 근무시간과 여가시간 사이의 물리적 시간배분을 놓고 서로 제로섬적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삶의 만족도를 높히기 위함이다. 일에서 느끼는 보람이 삶으로 전이되고 삶에 느끼는 행복이 일로 충전될 수 있어야 최고 수준의 진정한 워라벨이 달성된다.

제로섬적으로 접근해 일과 여가가 분절되고 대립된 것으로 취급된다면 일에서 여가로 여가에서 일로 전환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모된다. 일과 여가가 심하게 분절되어 있을 경우 일에 지쳐서 퇴근한다 하더라도 집에와서 여가에 금방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기억이 여가를 즉각적으로 즐기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여가에서 일로 복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의 충분한 휴식를 끝내고 일로 복귀했다고 그대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에 대한 패러다임과 여가에 대한 패러다임 사이에서 패러다임을 시프트하는데 드는 소모시간이 워라벨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일에서 추구하는 것과 삶에서 추구하는 것의 분절을 강요하는 회사에서 근무할수록 일과 여가 간 전환에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전환이 되었어도 잔상효과 때문에 여가나 일에 심각하게 몰입하지 못한다. 아래 사례가 제시하는 바대로 일반추심회사에서 근무해야한다면 회사에서는 악마처럼 일하고 집에 와서는 천사가 되어야 한다. 결국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몰입할 방법이 없다.

같은 추심업에서 일한다고 할 때 브리지포토 파이낸셜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느끼는 워라벨과 일반추심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느끼는 워라벨은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어도 천지차이일 것이다.

워라벨은 단순한 시간의 나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다른 영역을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정체성의 전환이 요구되기 때문에 시간을 확보했다고 워라벨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정체성과 집에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정체성이 분절되어 있다면 둘 간의 전환을 위해 요구되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이나 실질적 여가시간의 상당부분을 소모할 것이다. 정체성을 분절시켜가며 정신분열 환자의 상태를 요구하는 회사나 사회가 더 큰 문제다. 내 삶이 일에 의해 갈기 갈기 분절되고 찢어져 있다면 아무리 제도적으로 완벽한 워라벨 제도를 시행해도 시간과 자원만 낭비할 뿐이다.

제대로 된 워라벨을 제공하기 위해서 기업은 제대로 된 사명과 문화를 가지고 직원들이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일하는 보람은 커녕 직원들을 소진시키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은 이런 정신적 고갈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워라벨은 고식적으로 보이는 제도나 물리적 시간의 문제를 넘어 회사와 사회가 보유한 문화의 문제이고 체험된 시간의 문제이다. 회사가 문화적으로 직원들에게 일하는 보람을 제공할 수 없다면 워라벨을 위해 똑 같은 시간을 부여했어도 제대로된 여가를 체험할 수 없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은 것과 마찬가지다. 회사가 사명과 목적이 없는 회사라면 워라벨을 한다하더라도 효과는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개인적 삶 자체가 사명을 상실한 삶을 살고 있다면 아무리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라 하더라도 삶의 행복도는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40/52시간 등 모든 문제를 제도적 문제로만 고식적으로 해석하는 우리나라의 풍토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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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심회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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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하브리지Christina harbridge가 브리지포트 파이낸셜bridgeport Financial이라는 수금대행회사를 직접 설립한 계기는, 대학교 1학년 때 미수금을 독촉하는 한 회사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경험 때문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추심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직원들은 미수금을 독촉할 때 마치 먹잇감을 쫒는 사냥개와 같았다. 설정된 추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가며 무례하게 빚쟁이들을 몰아세웠다. 거의 매일 협박조로 빚쟁이들을 괴롭혔다. 크리스티나는 처음에는 그런 그들이 무섭고 싫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도 동료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크리스티나는 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동료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데 이들이 직장에서 빚쟁이들을 괴롭히던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상냥했던 것이다. 자신조차도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크리스티나는, 다른 개념의 추심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해보기로 결심한다.

1993년 설립한 브리지포트 파이낸셜은 다른 추심회사처럼 먹잇감을 쫒지 않고, 빚진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함으로써 더 성공적으로 수금을 할 수 있다는 사명을 세웠다. 긍휼감을 가지고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도와주는 회사를 만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빚에 대해서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빚을 갚으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런 사명에 따라 빚을 진 사람에 대한 개념도 다시 정립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빚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빚을 지게 마련이고, 다만 그 빚을 시급하게 갚아야 하는지 아닌지만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에 따라서 회사는 업무의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설정했다. 먼저 채무자를 몰아세우기보다는 채무자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처지를 들어주는 데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채무자가 빚을 갚을 방법이 있는지, 그럴 마음이 있는지, 단지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변재를 못하는지 등 상대의 고통을 먼저 이해하고자 하는 긍휼감을 보이기로 했다.

이런 업무 가이드라인에 따라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보너스는 수금한 금액이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감사편지를 받았는가를 기준으로 정했다. 한마디로 고객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것을 해소시켜주었는지가 보너스의 기준이다. 그리고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이와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직원을 채용했다.

결과적으로 브리지포트 파이낼셜의 수금성과는 업계 평균보다 3배 이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이 회사와 거래를 튼 고객은 평생고객으로 남았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보면 “인간관계가 진짜 돈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는 고객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광고용으로 달아놓은 것이 아니라 회사의 사명과 경영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크리스티나 하브리지가 수금업계최고의 회사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이해하고 풀어보려는 남다른 긍휼감 덕택이다. 문제를 뿌리 수준에서 정의할 수 있는 긍휼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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