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6 07:20
[N.Learning] 여성되기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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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진정한 여성되기
Executive Summary III
젠더 정치학자들의 주장은 직업, 직무, 직급에서 차별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던 남녀의 분리선을 가시적으로 제시해 이 분리선의 불공정성을 공론화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를 평가해 보면 이들은 가시화한 분리선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넘을 수 없는 정치적 벽을 만들었다. 이들이 어렵게 공론화한 평등이 안타깝게도 정치적 구호로 전락했다.
젠더 정치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남녀차별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갈등만 심화시켜 문제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 국가미래연구원은 조사 업체에 의뢰해 2017년 7월부터 2018년 말까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화제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사회 갈등 주제 가운데 남녀 갈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달했다. 이념 갈등(14.8%)과 세대 갈등(5.1%), 노사 갈등(4.5%)이 뒤를 이었다. 이것은 2015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남녀 갈등 비율이 31.2%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우리는 본 저서에서 젠더 내러티브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좀 더 미래의 번성을 위한 건설적인 대안, 즉 여성과 남성 모두 함께 상대방 성의 텍스트를 존중하며 서로 협업할 수 있는 미래 운동장을 설계하고 여기서 다양한 성들과 소수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차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여성이 남성을 제압해서 여성이 지금까지 갇혀 있었던 보이지 않는 차별의 감옥에 남성들을 가두는 것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진정한 여성되기는 생물학적 차이든 젠더 사회화로 봉인된 차이든 남녀의 ‘다름'을 인지하고 이 범주적 구별을 넘어서는 더 평평한 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남성들과 소수배경의 전문가들을 협업의 파트너로 초대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이 초대에 응해야 여성되기가 가시화된다. 남성뿐 아니라 고통 받는 능력 있는 소수를 협업의 땅에 초대해서 이들이 차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이 진정한 여성되기이다. 여성되기는 여성을 넘어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을 운동장으로 초대하고 이들과 전문성으로 협업해서 차별적 미래를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여성되기의 주체가 되는 이유는 성 다양성에 대한 이슈가 모든 다양성 문제의 가장 아픈 지점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 십 년 간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성 다양성 문제가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다양성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다름’이 누가 우월한가를 판가름하는 이원론적 정치적 도구로 전용되기 시작하면 미래에 대한 다양성의 비전은 사라지고 결국 차이는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멀어질 뿐이다. 다양성을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열쇠다.
저서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이원론이나 젠더를 통해 다시 고착화된 사회·범주적 이원론의 계곡을 넘어, 남녀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으며 서로 다른 인간으로 공진화에 기여할 수 있는 포용의 내러티브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남녀 간 제로섬의 정치적 싸움은 상대의 성을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양시키는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릴 수 있다.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때, 성 간의 갈등은 커져만 가고 성 범주가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계곡으로 굳어지게 만든다. 이처럼 성이 범주로 이원화된 사회에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젠더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양성 이슈를 평등의 관점에 고착시켜 보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의 성 범주의 우월성에 갇혀 산다면 모두 성 편견을 일으킬 수 있는 대문자 남성과 대문자 여성이다. 대문자 남성과 대문자 여성의 감옥에서 탈출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 차이가 생산적으로 연결되어 협업하는 새로운 관계 맺음의 운동장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자신의 성역할 스크립트를 상대의 성역할 스크립트와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 내고, 이를 새로운 협업의 지평으로 제도화해 남녀가 공진화할 수 있는 운동장으로 만드는 안목이 요구된다.
상대를 도구로 취급해 가며 자신의 정치적 욕구 실현을 위해 상대를 감옥에 가두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성다양성은 여성과 남성의 정치적 투쟁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피투성이가 되는 국면을 막을 수 없다. 성평등은 정치적 투쟁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더 큰 기회를 창출하는 일에 똑같이 기여할 수 있는 관계 맺음과 협업을 통해 제대로 성취된다. 성평등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의 시작점이지 종착역은 아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협업의 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성평등은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성 다양성은 관계 맺음과 협업을 통해 서로의 차이가 이어질 수 있는 공감과 환대와 기회의 플랫폼이다. 성 다양성의 사명을 통해 실현시켜야 할 것은 우리 후세들은 더 이상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으로 사회를 위해 마음껏 기여를 하고 이런 차별적 기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평가되는 미래이다.
우리가 약속한 미래가 실현되어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를 사후적으로 세어봤더니 우연이도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숫자로 판명난다면 성 다양성이 제대로 구현된 사회를 만든 것이다.
진정한 여성되기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평등을 넘어서 협업이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 미래를 위한 협업에 여성 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소수들을 초대할 수 있을 때 가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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