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18 20:49
[N.Learning] 우리는 왜 절규하지 않을까? 절규할 수 있는 용기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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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절규하지 않을까?
절규할 수 있는 용기
입은 때로는 욕하고, 먹고, 키스하고, 숨쉬고, 기도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로도 존재하지만 Bacon은 입이 절규를 하기 위한 도구도 된다는 것을 자신의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림처럼 Bacon은 교황의 절규를 뭉크는 일반인의 절규를 묘사하고 있는데 교황이 지르는 절규는 일반인이 공포 상황에서 지르는 절규와는 달리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최근 내 지인 한 분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교황과 뭉크를 패러디하듯 절규하는데 이분의 절규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절규가 무엇을 향한 절규인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절규하고 싶어도 절규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 절규와 동시 교황의 얼굴처럼 인자한 얼굴이 찌그러지는 것으로 변하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뭉크가 묘사하고 있듯이 절규자체가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두려운 것일까?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절규하지 않는 것일까? 규범화된 사회에서는 절규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이러다 죽음이 처들어와도 절규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최근에 만난 한 기업의 회장님은 당신이 기업을 하는 동안 지르고 싶은 자신의 절규가 종업원에게 들리지 않도록 참는 동안에 자신에게 큰 눈물 주머니가 생겼다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베이컨과 뭉크가 그림으로 절규했듯이 내 글이나 춤이나 노래나 내 삶으로도 절규할 수 있는건가?
왼쪽이 베이컨의<교황의 절규>, 가운데는 <지인의 절규>, 오른쪽이 뭉크의 <절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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