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을까?
상처를 대면할 용기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상처하나 없는 사람들은 없다. 상처는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전조이다. 다만 이 상처가 치유된 상처인지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은 상처인지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치유된 상처는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만 우리 모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모두 상처를 받고 이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숙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때 쓰는 방법은 시간에 치유기능을 맏기는 방법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믿고 시간의 저편 기억 속에 상처를 묻어 놓고 잊혀지기를 바라는 방법이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이런 방식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시간의 이불로 덮어놓은 상처는 겉으로 보이기에는 잊혀진듯 치유된듯 보이지만 무의식 저편에서 더 심각하게 곪아서 구더기가 생겨난다.
이 곪아 터진 상처는 비슷한 삶의 촉발적 사건이 터지면 다시 곪아 터져서 무방비 상태인 우리에게 보복한다.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잊혀졌다고 믿고 있던 숨겨진 상처가 다시 곪아 터져서 나오는 현상이다. 시간 속에 잊혀져서 무의식속에 숨어 아직 곪아 터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상처가 곪아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행동의 보폭을 줄인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의식으로로 어떤 특정한 행동들을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행동제한은 자신의 삶의 범위를 축소키겨 나가고 따라서 자신을 다시 감옥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감옥에 갇혀사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우리가 갇혀사는 무의식 속의 감옥이 심리분석에서 이야기하는 컴플랙스이다.
진정으로 컴플랙스를 치유하고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이 무의식의 이불을 겉고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설사 구더기가 생겼다 하더라도 이 상처를 직시하고 껴 안아주고 그 자체로 사랑해주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오래전에 배웠지."
_파울로 코엘료, 『알레프』 에서
상처를 직시한다고 치유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의 미래모습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이렇게 믿음으로 설정된 자신을 성공적으로 길러내었을 때 상처는 완벽하게 치유되고 이 순간 상처는 오히려 우리에게 삶의 보물로 다시 태어난다. 삶은 진주조개가 자신의 연한 살로 자신의 살에 상처를 주는 진주씨앗을 품고 성숙했을 때 결국은 진주를 품어내는 원리와 같다.
상처없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이 상처를 이기기 위해 시간 속에 숨고 감추고 잊는 컴플랙스 전략을 택하는지 아니면 이 상처를 보듬어주고, 사랑하고, 껴안아주는 용기 있는 태도를 취하는지가 그 사람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지를 결정한다.
세상에 자신만의 가시 하나씩를 품지 않고 성장한 사람은 없다. 가시가 내 몸에서 생성의 욕망으로 녹아 삶의 변화를 향한 물꼬로 작용할 때 상처는 내 삶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자신만이 자신을 상처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자신의 영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