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 실종된 나라의 유사 리더들
책무도 없고 책임도 없다
베트남 전쟁의 야사를 보면 베트남군에 의해 사망한 장교수보다 전쟁 중 미군 병사들에 의해 사살 당한 수가 더 많다는 기록이 나온다.
비록 야사지만 왜 이런 충격스러운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지금 대한민국 해병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성근, 김계환 등 장성,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이들의 마지막 배후일 것으로 추측되는 통수권자의 행태를 보면 상황이 이해된다.
지금 대한민국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상상해보면 전쟁의 승패는 고사하고 혼자만 살겠다고 채상병 죽음에 대한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 넘기 위해 일관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임성근, 김계환, 이종섭과 그 윗선이 장병들에 의해 먼저 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심지어는 이미 진실로 다 밝혀진 대통령 격노설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부하를 항명죄 수괴이자 망상가로 낙인 찍어 구속영장이라는 권력 이지매를 일삼는 상관과 이들이 장악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군인은 없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가짜를 대표하는 유사군인이자, 유사리더의 전형이다.
18세기 프로이센 시대 이래 독일군이 최강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계 명령형 지휘(Command Based Leadership)와 대비되는 임무형 지휘(Mission Oriented Leadership)라는 리더십 개념을 발전시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무형 지휘는 세부적인 방법보다는 달성해야 할 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제시하고, 현장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상황에 맞는 판단과 행동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지휘 방식이다. 전쟁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초뷰카 상황이다. 임무형 지휘는 예측불가능한 초뷰카 상황에 병사들이 이기는 임무에 집중할 수 있게 임무수행과 관련된 모든 역할을 스스로 만들고 결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허락하는 방식이다. 임무형 지휘는 경영학에서 구성원을 믿고 책무를 임파워먼트 시키는 Y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든 임무를 위임 받은 병사는 자신의 역할과 전문성을 통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지에 설명을 요구 받으면 언제든지 설명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부하가 자신이 충분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설명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책무성(Accountability)라고 부른다. 병사는 책무를 달성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임무형 지휘에서는 병사가 책무 수행에서 생기는 예측하지 못한 실수나 잘못이 발생하면 이것에 대한 잘잘못을 병사에게 귀책하지 않고 임무를 맡긴 지휘관이 대신 져준다. 발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주는 것이 책임(Responsiblity)다.
병사는 자신의 역할의 전문성을 갈고 닦아서 임무와 관련한 책무(Accountability)에 집중하고 지휘관은 여기서 발생한 결과에 대해 책임(Responsibility)을 져주는 구조다. 병사가 책무를 다하고 이 책무의 결과에 대해 지휘관이 책임져주는 책무와 책임의 상호 협업이 임무형 지휘의 본질이다.
리더가 나서서 부하의 임무 수행 과정에서 생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주는 것은 리더가 부하 대신 상처 받을 개연성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행동이다. 리더가 부하에게 중요한 임무를 임파워먼트 시키는 것도 신뢰에 근거하지만 이것을 넘어 리더가 부하를 위해 상처 받을 개연성을 인정하는 것은 신뢰 잔고를 확장시킨다. 모든 구성원은 이 신뢰 잔고를 이용해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에 집중해가며 협업한다. 리더가 부하들에게 임무를 임파워먼트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주는 것이 신뢰의 울타리를 만들어낸다. 부하는 이 울타리를 안전지대로 삼아 온전하게 맡겨진 사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부하의 죽음을 리더가 모두 책임지는 구조라면 누가 지휘관을 하겠냐는 질문은 이런 임무형 지휘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군대 근처에는 가보지 못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평생 명령만 내리고 부하는 절대 복종하는 명령형 지휘 속에서 생존을 유지했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부하를 믿지 못해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X 이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질문은 전쟁이 발발하는 실제 상황을 염두에 둔 군대의 존재 이유와 리더십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만 할 수 있다.
그림은 실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임무형 지휘를 수행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과 명령형 지휘를 수행하고 있는 푸틴의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리더십이 완전히 실종된 국가다. 리더십의 완성은 부하의 책무성과 리더가 나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협업할 때라는 리더십의 기본원칙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이 선출해준 여당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조차 지휘관의 책임조차 병사에게 떠 넘기는 지휘관을 옹호해가며 들러리로 나서고 있는 나라다. 자신들이 벌이는 일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 것인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전시가 아닌 시기에도 군대가 명령형 지휘 체계로 운영되면 실제 전쟁이 벌어져도 명령형 지휘 체계를 벗어나지 못해 군대는 당나라 군대로 전락한다. 위계형 지휘체계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할 때 일사분란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지배구조다. 전쟁이 실제 발발하면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전개된다. 예측 불가한 전쟁이 발생했음에도 명령형 지휘체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쟁에 절대 이길 수 없는 운명이다 .
위계적 명령 지휘 체계에 길들여진 지금 대한민국에 실제 전쟁이 나면 아무리 월등한 기술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어도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전쟁 중이다. 전쟁 중인 대한민국이 점점 패하는 구조로 전락하는 이유는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국가의 사명과 존재 목적을 실현하는 책무에 헌신하고 있는 병사와 국민에게 책임을 떠 넘기지 않고 제대로 책임지는 진성리더가 이끄는 최소한의 기본이 살아 있는 국가를 열망한다.
이런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자신이 지휘관이고 지금 전쟁 중이라면 누가 부하들에 의해 살해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얻고 리더로서 진정성 있는 영향력을 발휘해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초뷰카 시대 모든 조직은 따지고 보이면 총성 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능력 있는 구성원이 이탈하고 있다면 리더를 살해할 수 없어서 차선책으로 조직을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