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3-10 09:49
[N.Learning] 사람과 조직이 변화를 못하는 이유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5,019  
 

7. 근원적 변화를 못하는 이유


   사람들이 변화를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 나가는 맨탈모형의 존재를 통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사람이나 동물이나 조직이나 그 나름으로 세상을 보는 정신적 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정신적 지도를 맨탈모형이라고 규정한다. 이 맨탈모형은 길을 찾을 때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처럼 모르는 길을 찾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이다. 하지만 이 내비게이션이 오랫동안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는데 주변 세상은 이미 많이 변해버렸을 때 그럼에도 이 내비게이션의 주인은 여전이 낡은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향한 항해를 계속 진행할 경우 이 내비게이션은 장본인에게 정신적 감옥이 된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이 이 정신적 감옥에 갇힌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어떤 강력한 외적인 힘이 작용해도 자발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몇 가지 사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동물이나 사람들이 이 맨탈모형이라는 정신적 감옥에 갇힌 상황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야생코끼리를 훈련시킬 때 이 원리를 사용한다. 야생코끼리가 태어나면 발목에 족쇄를 채운다. 이 족쇄의 무게는 이 새끼코끼리가 아무리 힘을 써도 움직일 수 없는 정도이다. 야생의 본능을 가진 코끼리는 본능적으로 야성을 발휘하여 족쇄를 떨쳐내고 움직여 보려고 시도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런 기미가 보이면 조련사는 발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준다.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자신의 힘으로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족쇄를 채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코끼리는 다시 족쇄를 움직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보지만 족쇄가 채워진 이상 코끼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다시 코끼리가 포기할 때쯤 되면 족쇄를 풀어준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 신기하게도 코끼리는 발에 족쇄가 아니라 실끈을 묶어놔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다. 힘센 코끼리가 발에 묶인 실 한 줄 때문에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이미 코끼리는 족쇄와 자신에 관한 나름대로의 설명하는 이론을 맨탈모형에 장착하고 있는 것이다. 족쇄만 달려 있으면 자신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믿음을 현실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되면 코끼리는 자신의 맨탈모형 속에 자신을 가둔 것이다.

    세상에서 점프를 가장 잘하는 동물은 벼룩이다. 자신의 몸길이 보다 몇 십 배 높이를 뛰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벼룩에게 투명한 유리컵을 덮어씌우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벼룩은 높이 뛸 수 있다는 평소의 믿음으로 높이뛰기를 시도하지만 자신의 믿음과는 달리 장애에 가로 막히게 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한 벼룩은 몇 번을 더 시도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몇 차례 더 시도해보나 상처만 남기로 포기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태로 벼룩을 가둬두었다가 풀어주면 풀어준 상태에서 벼룩은 유리컵 높이만큼만 뛰게 된다. 확실한 것은 벼룩은 여전히 유리컵보다는 훨씬 높이 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은 유리컵 높이만큼만 뛸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 속에 갇힌 것이다.

   비슷한 현상이 꿀벌을 거꾸로 선 유리컵에다 가두고 막힌 쪽을 향해서 빛을 가하고 있으면 벌어진다. 이 상태에서 꿀벌은 빛이 오는 쪽으로만 지향하게 되어 있어서 결국은 다른 한 쪽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굶어죽게 되어 있다. 반면 파리를 한 마리 잡아서 똑 같은 실험을 해보면 파리는 이와 같은 빛 지향성이 없기 때문에 좌충우돌 왔다 갔다 하다 결국은 유리컵 밖으로 빠져 나와 목숨을 구하게 된다. 꿀벌은 햇빛 지향적 행동에 대한 믿음에 갇혀 생명을 잃게 되나 이런 지향성에 대한 믿음이 없는 파리는 살아남게 된 것이다. 결국 꿀벌은 빛이 향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 속에 자신을 가두어 자신을 희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맨탈모형에 갇혀 변화를 하지 못하는 사례는 꼭 동물들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에서도 똑 같이 나타난다. 미국으로 이민간 호주인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가 다른 이민자들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호주와 미국의 교통체계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달리 호주에서는 차가 왼쪽으로 다닌다. 운전대도 오른쪽에 달려있다. 물론 호주인들은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이와 같은 내용을 다 숙지해야 한다. 미국운전면허 시험에서 만점을 맞았다 하더라도 이들이 사고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수를 높이 맞는 호주인들이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인들은 운전을 하려고 자신의 차에 탈 때 무의식적으로 조수석으로 탄다. 당연히 운전대가 없다. 깜짝 놀란 호주인은 어 미국에는 차량강도가 그렇게 많다더니 내 차의 운전대까지 훔쳐갔다고 무의식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잘못 된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눈을 돌리면 제자리에 운전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제야 자신이 호주가 아니라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쓴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한적한 언덕을 향해 달릴 때나 밤길을 달릴 때 생기게 된다. 무의식중에 자신이 미국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왼쪽 선으로 달리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차와 부딪혀 큰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아직도 호주에서 이용하던 운전에 대한 맨탈모형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면 호주에서 가져온 맨탈모형을 포기하게 되나 이런 행운은 행운아들에게나 주어진다. 과거의 맨탈모형의 감옥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사고는 이미 터져 버린 것이다.

   유럽의 공군기지에 파견되어 생활하던 미 공군 조종사들이 본국으로 송환되면 비슷한 사고를 많이 당한다. 비행기의 탈출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탈출구가 밑에 달려 있어서 탈출해야 할 상황에 이르면 비행기를 한 바퀴 빙글 돌린 후 탈출단추를 누르게 되어 있다. 오랫동안 이와 같이 훈련받은 조종사가 본국으로 귀환하면 다시 훈련을 받는다. 미국 전투기는 탈출구가 위에 달려 있어서 탈출단추만 누르면 되게 되어 있다. 송환훈련을 무사히 마쳐 시험에서는 만점을 맞은 조종사들이 편대에 배치된다. 그러나 문제는 위급한 상황에서 여기는 미국이므로 그냥 탈출버튼만 누르면 된다는 지식이 전혀 쓸모없게 된다는 점이다. 위급한 상황을 당했을 때 조종사들은 그냥 단추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유럽에서처럼 비행기를 한 바퀴 빙글 돌려 버튼을 누르게 된다. 과거의 맨탈모형에서 벗어나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이다.

   생각보다 머리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과거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맨탈모형의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의 성공이 자신을 과거의 맨탈모형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는 지적으로는 날고 긴다는 컨설턴트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서 MBA를 받고 고액의 연봉을 챙기는 성공의 상징이다. 이들의 과거는 성공의 연속극으로 채워져 있다. 머리로 하는 공부에서는 다른 누구도 이들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공에 대한 심취는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은 성향을 길러내 이들에게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실수를 할 경우 과거 자신의 영광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신을 변호하고 문제를 남들에게 전가 시키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고객으로부터 불만이 고조되고 이것이 회사에 피드백 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은 회사에서 퇴출당한다. 한번 자신감을 상실한 이들은 끝없이 표류에 표류를 거듭하다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게 된다.

   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맨탈모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회사들은 결국 퇴출되게 마련이다. IBM이 과거 자신들이 장악한 거대한 메인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 컴퓨팅 산업의 맨탈모형을 고집하다고 거의 망할 뻔한 상태에서 기사회생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업계에서 한때 일등의 자리에 앉았던 기업들이 업계가 변했음에도 자신이 잘 나갈 때 구축해 놓은 맨탈모형의 덧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일등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은 대부분이 과거의 맨탈모형의 덧에서 벗어나지 목한 경우이다. GM을 비롯한 미국자동차 회사들이 일본의 소형차들에 의해서 밀려나게 된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석유파동으로 기름 값이 치솟는 상황에서도 큰 차만이 차의 모든 것인 것처럼 믿고 기름이 덜 드는 일본차를 멸시하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의 맨탈모형이 바로 자신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사례들은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생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습관을 버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습관을 산출하는 공장이 과거의 맨탈모형인 것이다. 따라서 맨탈모형이 수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적인 압력에 의해서 과거의 습관이 버려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압력이 없어지게 되면 과거의 맨탈모형을 기반으로 다시 과거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맨탈모형은 습관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맨탈모형이 고쳐져야 근원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레빈이 변화의 3단계 중 첫 단계를 녹이는 단계로 규정했다면 이 녹이는 대상은 습관이 아니라 이 습관을 재생해내는 맨탈모형인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최대 장애인 이 맨탈모형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며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이를 극복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맨탈모형의 속성

   정신모형은 인간의 뇌를 통해서 복잡한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가정, 신념, 가치, 정체성의 체계이다. 즉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게 해주는 인지적 지도를 지칭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직면할 때 생기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이론체계이다. 이 이론체계는 외부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항하여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지역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이론체계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다. 어린이나 학교근처에 가보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당신들의 주변 일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이것이 옭던 그르던 모든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다. 정신모형에 의해서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연출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이 정신모형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흔히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세상을 듣는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자신에게 고유한 맨탈모형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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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던 노인이던 과학자이던 일반인이던 사람들은 모르는 세계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대면해 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이다. 둘째, 나름대로의 대상을 설명하는 가정이 설정되면 이 가정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다. 문제는 과학자처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자기편한 방식대로 주변에 있는 증거를 모두 동원하여 검증한다는 것이다. 수차례의 검증과정을 거쳐서 확정된 가정은 더 이상 이를 부정하는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경우 더 이상 검증의 필요성을 갖지 않은 믿음 big assumption이 된다. 일단 검증의 대상에서 검증이 불필요한 믿음의 지위를 획득하면 지식의 범주를 넘어서서 우리 맨탈모형을 형성하는 요소로 정착한다. 맨탈모형은 이와 같은 검증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세상을 설명하는 믿음내지는 신념체계인 것이다. 이 신념체계는 수많은 검증과정을 통과한 것이어서 더 이상 수면위로 떠올라서 의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의 세계에 가라앉아서 세상을 보는 눈이 된다. 이와 같은 역할이 바로 맨탈모형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행동하는 프래이밍 framing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벼룩이 자신의 맨탈모형을 바꾸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보기로 하자. 컵 속에 갇히기 전의 벼룩의 뛰는 것에 대한 맨탈모형은 자신의 키보다 최소한 몇 십 배는 더 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패기만만한 벼룩을 잡아다가 컵에 가두게 되는 과정에서 벼룩은 자신의 가정을 다시 테스트 하게 된다. 이 검증과정에서 자신은 컵의 높이만큼 밖에 뛸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 과거의 가정을 버리고 새로운 가정을 세우게 될 것이다. 또 이 가정을 몸으로 수백 번 반복해 테스트해보아도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느 시점에서는 결국 더 이상 검증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검증을 포기하는 시점이 자신은 컵의 높이만큼 밖에 뛸 수 없다는 가정이 믿음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전환된 가정은 더 이상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벼룩의 행동과 태도를 프래이밍 해가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제시하게 된다.

   한 때 우리는 지구는 평평하다는 맨탈모형을 가지고 지구를 설명하던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나타나서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가정을 제시했고 이와 같은 가정이 검증되는 과정에서 결국은 지구는 둥굴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믿음에 따라서 행동한 결과가 서구에 의한 미국대륙의 발견이다. 갈릴레이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지 못했다면 지금의 아메리카는 아직도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땅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믿음이 어느 범위를 벗어날 경우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라는 황당한 예측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새 대륙발견을 위한 여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맨탈모형은 왜 사람들이나 조직이 변화를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맨탈모형이 과거의 습관을 끊임없이 재생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나 조직이나 현실성이 떨어진 맨탈모형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과 조직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정신적 감옥에 가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성공적 변화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전에 더 이상 유용성이 떨어진 과거의 맨탈모형의 정체를 이해하여 이것으로부터 우리자신들을 어떻게 해방시킬 수 있는 지이다. 이와 같은 해방을 레빈은 해빙 unfreezing 의 단계로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빈은 과거의 맨탈모형을 버리지 않고는 진정한 변화를 설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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