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리는 답변은 이런 문제가 남성과 여성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견해다. 남성과 여성도 전선의 하나일 뿐이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다른 전선에서 생기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린다.

지금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에서 전운이 감돈다. 밀레니얼을 구성하는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전선, 청년과 노인 간의 전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가난한 사람, 대기업과 하청기업, 태극기 부대와 좌파세력, 지역간의 전선 등등 우리가 이원론적으로 나눠놓은 모든 세력간에는 긴장이 여전보다 아주 높게 고조되고 있다.

이런 전선과 갈등이 심화되는 현상에 대한 많은 분석이 있겠지만 내가 제시하는 설명은 프래이밍 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경기가 L자 저성장, 저소비, 저금리 사회가 뉴 노멀로 고착되어 이런 국면이 헤쳐나올 수 없는 국면으로 받아들여지자 생긴 문제로 보인다. L자 경기는 우리나라가 팽창사회에서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완전히 활력을 잃고 바람이 빠져가는 <수축사회>로 진입했다. 사회가 수축사회로 진입하면 더 이상 파이가 커질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지금 가진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지에 대한 제로섬 게임으로 전환된다.

남성과 여성간의 긴장도 이런 L경기로 인한 수축 사회적 국면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이 줄어드는 일자리를 가지고 경쟁해야 하는데 남성들은 이 시기에 군대에 가야하므로 똑 같은 일자리를 차지하는데 여성들에게 뒤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줄어든 파이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여기에 회사에서 장려하는 가정친화적 제도나 워라벨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이런 정책이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지각하고 있다. 기준을 여성에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두고 비교하는 닻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 임원급에 해당되는 자리는 거의 모두가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인용하며 우리사회의 유리천정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수축사회적 국면이 미래에 개선될 기미가 있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참고 견디겠지만 이런 저성장, 불경기 기조가 당분간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제로섬 싸움에 더 불을 당기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정치나 기업이 국민들에게 더 이상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래를 확신하고 이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혁신하는 모습보다는 정치가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 싸움에 더 몰입해 있고 기업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고 불안으로 이익금을 보험처럼 쌓아 놓는 일에 몰입하고 있다. 미래는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지금 하는 일들 속에 씨앗으로 심어서 과일나무를 길러내는 혁신을 통해 얻어진 과일을 체험해보게 함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정치가들이나 기업들은 미래에 먼저가서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 혁신하는 모습보다는 수축사회 국면에 자신들이 먼저 보호막을 치고 자신의 밥그릇을 먼저 챙기는 모습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일례로 지금 야당의 전당대회를 보면 과거에 뒷다리에 잡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다. 코메디같은 전당대회가 끝나면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야당이 무너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고 여당이 뚜렷하게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 붙잡혀 기득권 싸움에 몰입한 동안 정치는 불안만 더 전염시켜 사회 각 영역에는 감도는 긴장은 극에 달하게 조장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간의 긴장도 남성 여성 간 미시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근원적인 미래에 대한 불안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양 편으로 갈라진 사람들이 상대를 문제해결을 위한 협업의 파트너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긴장은 불안을 먹고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큰 괴물로 자라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진성리더 사라졌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