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영자들에게 드리는 조언:
Engagement를 제대로 살려라
경영학에서 유행어(buzz word)처럼 쓰고 있지만 개념 정의가 가장 안 된 상태로 여기저기 상황에 따라 모호하게 쓰고 있는 용어가 Engagement(인게이지먼트)이다. 정의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 한국에서도 그냥 영어로 인게이지먼트라고 쓰는 경향이 강하다. 본인도 주로 인게이지먼트라고 쓰고 있으나 외래어여서 찜찜할 때는 그냥 열의라고 번역해서 쓰고 있다.
인게이지먼트란 무엇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용어일까?
인게이지먼트와 가장 혼용해가면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로는 종업원 만족(employee satisfaction)과 조직몰입(organizational commitment)일 것이다. 인게이지먼트에 대한 학술논문을 리뷰해보면 인게이지먼트의 정의에 만족과 몰입이 다 포함되어 있어서 동어반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족이나 몰입과 구별되는 무슨 내용을 지칭하기 위해서 인게이지먼트를 끌어들인 것은 사실인 것같은데 학자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게이지먼트와 조직몰입이나 만족의 상관관계를 보고 하는 논문들을 검토해보면 상관관계가 보통 .70을 넘는다. 결국 이들이 측정한 인게이지먼트가 조직몰입이나 직무만족과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왜 인게이지먼트라는 용어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인게이지먼트는 남녀관계에서 약혼의 단계를 의미하므로 조직과 종업원의 문제를 남녀 두 사람이 사랑을 실현시키는 과정과 비유해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의도 했던 의미가 분명하게 떠오른다.인게이지먼트(engagement)는 약혼의 단계라면 몰입(commitment)은 이미 결혼을 한 것과 진배 없는 단계이다.
약혼은 상대가 나의 이상형인지를 판단하는 단계이다. 상대가 이상형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서로 부담없이 약혼을 철회할 수 있다. 이미 결혼을 했다면 파혼하기 위해서는 이혼이라는 패널티를 치뤄야 한다. 이혼에는 아이나 위자료 재산배분 등 의무감을 철회하기 위한 엄청난 비용이 부가된다. 인게이지먼트의 단계에서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도 공유한 것이 아니다. 상대가 이상형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아니라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비용없이 철회할 수 있다. 약혼의 단계가 인게이지먼트라면 만족(satisfaction)의 단계는 그냥 썸을 타는 정도로 볼 수 있다.
결혼관계를 통해 종업원과 회사와의 관계가 이해가 되면 회사와 종업원간에도 유추해 적용해볼 수 있다. 종업원과 회사의 밀원관계는 심리적 계약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종업원과 회사와의 법적 계약이란 빙산의 드러난 부분이고 심리적 계약은 빙산의 밑둥에 해당된다. 이 밑둥이 유지되지 못하면 법적계약은 논의자체도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질적으로 관계가 유지되는지는 법적계약이 아니라 심리적 계약이 지켜지는지에 달려있다. 회사와 종업원간의 애정관계도 이 심리적 계약에 반영되어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던 시절에는 종업원과 회사와의 관계가 평생고용이라는 심리적 계약에 의해서 움직였다. 회사는 종업원을 평생책임져주고 종업원은 딴 생각없이 정년퇴임할 때까지 회사에 충성을 바쳐서 일해야 했다. 하지만 경쟁이 심해지고 수요보다는 공급이 넘치자 회사가 종업원을 평생고용하는 심리적 계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생존을 위해서 언제든지 종업원을 내보낼 수 있어야 했다. 심리적 계약이 바뀌었다. 회사는 평생고용을 못해주는 대신 종업원을 내보낼 때 다른 회사에 의해 고용개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어야 하고, 종업원의 충성개념도 회사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시장에서 몸값을 결정해주는 고객에 대한 충성개념으로 바뀐다.
조직몰입(commitment)란 평생고용이라는 심리적 계약이 지켜지던 시대에 유행하던 개념이다. 평생고용이 불가능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이미 결혼한 상태인 몰입이 아니라 약혼의 상태인 인게이지먼트가 최적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해당하는 개념을 찾다보니 인게이지먼트가 발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사와 결혼을 한 상태인 몰입은 의무감을 가지고 회사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떨림보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약혼만 한 상태인 인게이지먼트에서 종업원들은 회사에 가서 일을 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림을 느껴야 정상이다. 회사가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고 회사에 가서도 영혼없이 일하다 퇴근을 한다면 인게이지먼트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회사들은 지금과 같은 경영환경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경향이 생긴 것은 신자유주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종업원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영혼은 회사 문밖에 걸어놓고 회사에 출근하도록 강요당했다. 회사에서는 경영진이 시키는대로 영혼없이 몸만가지고 일하다가 퇴근할 때 문밖에 걸어놓은 영혼을 찾아가는 삶을 살았다. 대한민국에 신자유주의의 쓰나미가 닦친 것은 IMF에서 부터이다. IMF가 1997년에 시작되었으니 인게이지먼트를 부인하는 시스템 속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것이다.
인게이지먼트는 문밖에 걸어놓은 영혼을 가지고 들어와서 자신의 일과 섞는 것을 의미하지만 20년간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회사나 종업원들은 이런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지금은 공급이 넘치는 것을 넘어서 L자 국면의 경기에 돌입해서 인게이지먼트가 없어서 영혼없이 만들어지는 서비스나 제품으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이다. 지금 모든 조직에서 인게이지먼트의 복원은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해결해야할 가장 큰 딜레마이다. 인게이지먼트는 컨설팅 회사에서 조언하는 방식대로 인센티브나 복지나 일하는 조건을 조작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업원이 자신의 영혼을 회사에 가지고 들어와서 자신의 일에 섞는 조건은 자신이 일하는 의미가 분명할 때이다. 일의 의미가 분명한 회사는 회사를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시키는 존재이유 즉 목적을 실현하는 회사에서만 가능하다. 목적이 의미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회사가 천명하는 목적과 사명을 보면 회사는 이윤을 넘어서 고객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긍휼감을 가지고 해결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고객만족을 넘어서 고객의 통점을 이해하고 이 문제를 긍휼감을 가지고 해결해줌으로서 고객이 성장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을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런 회사에서는 종업원은 회사에 충성하는 것을 넘어서 고객의 아픔에 집중해가며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서비스나 제품으로 해결해줌을 통해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이를 통해 자신의 성장체험도 실현시킨다.
인게이지먼트가 작동되는 회사는 고객의 성장체험과 종업원의 성장체험이 살아서 서로 시너지를 내는 회사이다. 고객과 종업원의 성장체험을 묶어주는 것이 바로 존재의 수준에서 자신들을 차별화시키는 목적이다. 목적을 각성하지 못한 회사는 종업원의 인게이지먼트를 동원하기 위해서 많은 재원을 쏟아 붓지만 다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다. 돈으로 종업원 만족을 높히면 인게니지먼트가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면 돈으로 영혼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돈으로 모든 경영의 이슈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는 시대를 거꾸로 가는 초보 경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