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상수가 되어버린 초연결시대에도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직 내에 종업원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지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일하는 놀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라고 불리는 이 놀이터는 펀 경영에서 이야기하는 놀이터와는 다른 놀이터이다. 전문가들의 놀이터에서는 오직 일을 통해서만 놀이경험을 체험한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Netflix, Google, Amazon, Zappos, Southwest Airlines, Whole Foods, Gore Tex 사명지향의 역할조직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원리이다.
전문가들의 놀이터의 핵심원리는 조직이 정한 사명과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업의 개념을 만든다. 이 업의 개념이 놀이터의 튼튼한 울타리가 된다. 조직의 사명과 목적에 기반을 두고 업에 몰입하는 하는 한 모든 구성원은 같은 식구이고 전문가이다. 구성원은 이 울타리 안에서 조직의 보호아래 심리적 안정감을 느껴가며 일을 통해 마음껏 실험을 하고 실수를 하고 결국에는 일을 통해 성과를 내는 방법을 만들어낸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종업원들을 어른 취급한다. 이 어른들은 조직이 정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직무를 넘어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스스로 창안하여 수행한다. 일을 통한 전문성의 신장은 종업원들에게 성장체험을 제공한다. 이 성장체험은 공정한 보상과 더불어 전문가의 놀이터의 발전소를 돌리는 연료이다. 보상이 밖에서 주어지는 연료라면 전문가로서의 성장체험은 스스로 자가발전을 일으키는 연료이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를 운영하는 회사는 항상 활력이 넘친다. 종업원 몰입이나 인게이지먼트에 대한 걱정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동양고전 <<禮記.學記>>에 나오는 “경업락군(敬業樂群)”의 원리와 같다. 경업은 자신의 일을 업으로 승화시킨다는 뜻이고 락군이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최적화 된 상태라는 뜻이다. 즉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을 업으로 승화시켜서 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최고의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 명의 석공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궁금해서 각 석공들에게 물어본다. “왜 그렇게 열심히들 일하고 계세요.”
첫째 석공 왈,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왔어요.”
“틈만 나면 도망갈 겁니다.”
둘째 석공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일당 5만 원짜리 일을 하고 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해요.”
셋째 석공은 앞의 두 석공과 달리 환한 웃음을 지어가며 정말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석공의 대답은 다르다. “일개 석공이어서 잘은 모르지만 성전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전이 성공적으로 복원되어서 믿음을 잃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믿음을 찾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내가 하는 일이 일개 석공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명의 석공 중 세 번째의 석공만이 자신의 일을 업으로 승화시켜 경업하는 석공이다. 설사 억이 넘는 월급을 받는다하더라고 경업하지 못한다면 일 억짜리 일개 월급쟁이에 불과할 뿐이다. 경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인 낙군의 상태를 만들 수 없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업으로 승화시켜 일하는 경업의 상태가 조직을 최적화 시켜 모든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 職員과 종업원 從業員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직원은 돈을 받고 회사에서 맡긴 일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職) 사람(員)을 말한다. 이 사람들은 계산이 밝아서 자신이 보상받은 만큼만 일한다. 반대로 종업원이란 업業을 따라從 일하는 사람員들을 말한다. 첫째와 둘째 부류를 직원이라고 부른다면 셋째 부류의 사람들이 종업원이다.
경업락군은 회사가 종업원들에게 사명과 목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업의 울타리를 제공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업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회사가 사명 내지는 목적이라는 울타리를 제공해주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의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단기적 성과를 아무리 어렵게 내도 이것이 장기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회사가 경업락군의 조건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회사의 성과의 독은 밑이 깨진 상태이기 때문에 어렵게 단기적 성과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나 단지 생계의 수준만을 간신히 채울 뿐이다.
회사가 구성원에게 성전을 복원하는 스토리를 제공하고 구성원들은 이 사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업으로 승화시켜 하고 있을 때 모든 것들이 최적화되어서 모든 구성원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락군의 상태가 만들어 진다. 낙군 collective optimism이란 전체의 수준에서 일이 최적화 optimism된 상태를 말한다. 전체의 수준에서 최적화된 상태가 만들어지면 조직을 혼돈과 과정손실로 몰아넣었던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에너지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 에너지가 바로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일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경업락군의 원리는 혼다 자동차를 창업한 혼다 소이치로, 마쓰시다 전기와 정경숙의 설립자, 마쓰시다 고노스케, 교세라 및 JAL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이념에도 잘 녹아 있다. 이들이 일본에서 3대 경영의 신으로 추앙되는 이유도 결국은 회사를 경업낙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서 구성원들을 직원에서 종업원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종업원들은 회사에서 제공한 놀이터에서 일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놀이 체험을 한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이들 회사에 산소가 무궁무진하게 품어져 나오는 커다란 숲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산소가 품어내는 숲을 가진 회사는 항상 활력이 넘쳐 시끌벅적하다. 경업락군하는 회사는 종업원들을 어른으로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준다. 회사에서는 실패조차도 목적과 정렬되어 있다면 학습으로 규정하여 장려한다. 실패를 장려하는 학습 분위기는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숙성시킨다. 최근 이런 경업락군이라는 전문가들의 놀이터로 성공해 매스컴의 부각되고 있는 일본회사로는 신칸센 청소대행 회사 텟세이, 계측기계로는 세계 1위인 호리바 제작소 등을 들 수 있다.
회사가 사명과 목적을 통해 성원에게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의 울타리를 제공해주지 못하면 종업원들은 나름의 안정지대를 마련하기 위해 토굴을 파고 숨는 성향이 있다. 자신만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회사 내에 구성원들이 토굴을 파고 숨어버리면 조직의 과제의 성공을 위해 협업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개인들이 동굴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각 부서들이 협동해서 동굴을 파고 숨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회사는 사일로 현상이 극에 달해 동굴과 동굴이 속으로 연결된 정치적 연줄이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동굴을 파고 숨는 이유는 자신들만의 피신처인 심리적 안정지대가 필요한데 회사가 그것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정지대는 자신과 세상 사이에 버퍼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지대가 있어야 변화하는 세상에 그대로 벌거벗은 채로 노출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동굴을 파고 도피해 있는 구성원들에게 보다 생산적인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회사의 미래는 없다. 리더의 역할이 바로 더 생산적인 심리적 안정지대를 만들어서 구성원들을 동굴 밖으로 뛰쳐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되는 생산적인 심리적 안정지대는 전문가들의 놀이터를 말한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구성원들이 일을 통해 안심하고 학습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를 말한다. 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이 나날이 증가하는 것을 체험하는 성장체험의 공간이다. 리더가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지대가 자신들이 숨어 있는 동굴보다 더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종업원들은 영원히 케이브 맨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리더가 만들어줄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로서의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사명의 울타리와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마당과 목적에 대한 믿음과 해석을 담당하는 성소로 구성된다. 사명의 울타리는 예측가능성을 제공해주고 마당은 일을 통해 마음껏 실험하고 실험을 통해 전문가로의 성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성소는 회사의 목적에 대한 믿음을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공진화시키는 성당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부분의 한국의 회사들의 모습은 큰 산에 온통 토굴의 흔적만 보인다. 구성원들은 운동장이 아니라 토굴에 숨어 정치를 하고 있어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