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리더십 신화들 속에 숨어 있는 더 근원적 신화
21세기 리더들은 비전으로 같이 합심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리더로써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평범하지만 다양한 시각을 동원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해서 상황을 같이 읽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조직 구성원이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기반으로 남은 조직 구성원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창출해주어야 한다. 팀원들의 지위가 무엇이든 모두가 사장급이되어 조직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데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21세기 리더들에게는 타고난 리더십의 능력만으로는 세상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시대에 살고 있다. 리더가 되기로 선택하고 죽는 날까지 리더로써 필요한 역량을 배워서 리더로 거듭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1세기 리더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리더십 역량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리더들이다. 리더십은 상황과 리더십 역량이라는 씨앗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룰 때 발아되는 묘목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토양에 잘 맞는 묘목을 선택해서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묘목에 물을 주고 비료를 줘서 성장시키는 것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묘목을 터전으로 큰 숲을 만들어서 조직에 산소를 펑펑 품어 나오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조직은 리더십으로 일가를 이루게 된다. 또한 리더십의 성공으로 조직의 토양이 바뀔 경우를 염두에 둔 리더십을 구가해야 한다. 새로운 토양에 맞는 리더십을 스스로 구사할 수 없다면 21세기 리더들은 적절한 후계자를 찾아서 리더십을 계승해주어야 한다. 리더십의 계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조직은 2인자와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감내해야 하고 이러는 과정에서 조직에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런 점에서 큰 리더를 길러내는 리더는 21세기에서는 진정한 수퍼리더로 칭송된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리더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공은 직업들에게 돌리고 자신에게 씌워진 비난은 기꺼이 감내하는 겸양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21세기의 리더십의 흐름을 간파해서 모든 점들을 체질화 했다하더라도 진정 훌륭한 리더로 칭송 받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이 모든 리더십의 뿌리에 해당하는 리더십의 원리를 망각할 경우이다. 이 뿌리에 해당하는 리더십의 원리가 리더의 진정성의 문제이다. 리더가 자신의 리더십에서의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1세기를 풍미하는 모든 리더십은 천박한 리더십 스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은 자기 자신에 진솔하고 거짓됨이 없는 상태 (true to oneself)로 신 앞에서 발가벗겨져 있는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도록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리더에게 진정성이 결여될 경우 모든 리더십 스타일들은 일종의 상대를 이용하는 스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리더십이 진정한 효과성을 발휘하지 못한 다는 것이다. 비전너리 리더십도 비전이 달성되는 순간 결국은 리더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다는 것을 담보할 방법이 없으며, 카리스마가 어느 순간 부하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칼있으마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으며, 변혁적 리더가 설파한 새로운 세상이 부하들을 배제한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 많은 상황적 리더십 이론들이 부하를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막을 방법이 없다. 부하를 육성하는 수퍼리더나 서번트 리더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자신의 이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시작했다면 이것이 어느 순간 왜곡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리더가 리더십 행동들을 자신의 진정성에 기반을 두어서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리더 자신 밖에는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즉 리더가 자신의 진정성을 언제나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어떤 리더들은 자신이 진정성을 연출하고 있는 사실을 진정한 진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결국 21세기 리더십의 마지막 신화는 리더의 진정성에 대한 신화이다. 많은 활로우어들은 자신의 리더의 진정성을 신화처럼 철석같이 믿고 따르지만 리더 스스로도 자신의 진정성에 대해서 확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어느 순간 부하가 믿는 리더의 진정성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다면 리더의 진정성을 담보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부하들은 리더의 진정성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리더는 누구나가 자신의 진정성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결국 21세기 리더십의 문제를 내용에 따라서 정리해보면 워렌 베니스 Warren Bennis의 주장처럼 리더로써 조직이 달성해야할 올바른 일을 정하는 것과 관리자로써 조직이 정한 일을 올바르고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다.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것은 비전을 설정하는 작업과 관련된 작업이고 올바르게 일을 한다는 것은 설정된 비전을 잘 수행해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바른 비전의 설정은 조직이 바르게 나가야 할 길을 인도해준다. 그러나 아무리 올바른 방향을 설정했다 하더라도 비전에 설정한 약속이 집행되지 못한다면 이 비전은 공허한 비전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이를 실행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리더들의 유형을 분류해 보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은 탁월한 반면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이들은 공상가에 불과할 것이고, 반대로 집행하는 능력은 뛰어난 반면 비전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경우 행동대장 스타일의 리더가 될 것이다. 리더는 결국 이 두 가지 능력에서 모두 탁월성을 증명해 보인 사람들이다. 21세기 리더십의 근원적 신화인 리더의 진정성의 신화는 이 베니스가 설정한 리더들 중에도 진정성이 떨어지는 가짜 리더가 있을 수 있어서 21세기 리더십에서는 이들 중 진짜 리더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내는데 연구력을 집중해야 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리더와 가짜 리더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진성리더십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진솔한 리더는 남들에게 리더십을 행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진솔하게 이끈 경험을 기반으로 한 리더들만이 진짜 리더로 규정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제대로 된 리더십도 행사하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위를 기화로 활로우어들에게 리더십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진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활로우어들은 자신의 리더가 평소에 외적인 압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사하는 리더십의 국면을 관찰하게 되고 이 관찰을 통해서 리더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형성한다고 본다.
자신에게 리더십을 제대로 행사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부하들과의 관계를 인간자체의 존재론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도구적, 소유적 관계로 규정하게 된다고 본다. 또한 부하와의 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에 모든 총력을 집중한다고 본다. 이들이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부하와의 관계를 수단적으로 이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스킬이나 스타일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떨어지는 가짜 리더에게 리더십은 부하의 성장이 아니라 부하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동원하는데 필요한 스킬이나 스타일의 효과성에 집중된다. 문제는 인생은 한 번의 게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의 게임의 결과가 다음 게임으로 피드백 되고 다시 이 결과는 다음의 게임의 인풋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겪게 될 경우 이전의 게임에서 진정성을 잃어버린 리더는 다음 게임에서 부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부하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리더는 부하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외적인 보상이나 상벌 등을 동원해야 한다. 상벌로 부하를 움직이는 리더들에게는 동원한 자원의 범위에서 예측 가능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세상에 신성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리더십의 기적 같은 일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