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 오기전에도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고 장담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이 사회과학 서적 냄새를 짖게 풍기는 난쏘공을 읽고 여태까지 읽은 어떤 소설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깊은 충격에 빠졌다. 오랫동안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라는 개인의 지평을 넘어 사회라는 지평을 겨우 발견했는데 이 지평의 모습이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키작은 난쟁이들이 공을 쏘아대는 지평이었다.

난장이기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난장이는 사회적 약자를 지칭한다. 공은 희망의 상징한다. 달을 향해 쏘아올린 작은 공은 달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항상 중력에 끌려 떨어진다. 중력은 사회적 권력과 부정부패를 의미한다. 이 중력에 끌려 땅에 떨어진 공은 소시민에게 다시 절망이 된다. 소시민들은 공이 떨어질 것임을 알고도 공을 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삶의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죽음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 조세희씨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출판의 소회로 세월이 지나면 이런 소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현했다. 작가의 희망과는 달리 난쏘공은 지금도 읽히고 있고 누군가는 아직도 달을 향해 난쏘공을 쏘아 올리고 있다.

최근 대표적인 난쏘공의 주인공은 승리 등이 관련된 나이트클럽 버닝썬 사건의 폭로자 김상교씨, 조선일보와 장자연 사건을 폭로한 윤지호씨,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사망한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김학의 법무차관의 성접대의 희생자로 등장하는 여성 등등이다. 이분들이 떨어지는 공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을 쏘아 올리지 못했다면 이 사건들은 다 죽어 있을 운명이었다. 이분들외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보면 난쏘공을 쏘는 국민들은 넘쳐난다.

조세희씨가 난쏘공을 올리던 시대와 지금의 난쏘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거의 난쏘공은 중력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권력자들이 가진 막강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대부분 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 사람들은 개인이 쏘아 올리는 난쏘공을 포기하고 집단으로 뭉쳐 권력에 직접 항거하며 화염병을 던졌다. 난쏘공이 분노의 화염병으로 진화한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권력의 문제가 사라지자 SNS를 통해 난쏘공을 쏘는 개인들이 다시 등장했다. 이들이 쏘아 올린 제대로 된 난쏘공은 다른 사람들이 열망을 타고 풍선이 되어 달로 향해 오르는 모습을 연출한다. 광장에 모여 화염병을 던지기보다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세상에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난쏘공을 쏘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난쏘공이 네트워크 상에서 울림을 창출하면 난쏘공은 이 울림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나는 작가 조세희씨의 바램과는 다른 바램을 가지고 있다.

사회는 성장하면 할수록 그에 맞는 교묘한 불공정성과 차별이 등장해 소시민들을 억압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부당한 일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소시민들이 생업을 핑게로 난쏘공 쏘는 일을 포기했을 때이다. 제대로 된 난쏘공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고통 현실 속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다양한 소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쏘아 올렸을 때이다.

역사는 칠흑과 같은 캄캄한 밤에 모두가 진흙탕 속을 걷고 있어도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음에 의해서 진보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