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카피하도록 명한다.
대선에 대한 기대
마르크스는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극단으로 반복되지는 않더라도 역사는 자신을 카피하도록 하는 유전자 밈meme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본능에 따라 성공의 역사이던 비극의 역사이던 이것을 카피만한다면 미래의 모든 역사는 비극으로 종결된다.
역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는 인간들의 속성을 이용해 비극을 카피하는데 집중한다. 비극이 비극을 낳는 것이다. 성공의 경험도 단순히 카피할 경우 비극으로 이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에 처한 인간에게 과거의 성공경험을 카피하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과거와 판이하게 다름에도 과거의 성공비법에 집착하면 현재의 상황과 성공경험이 충돌을 일으켜 비극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성공경험에 집착하는 나라나 사람치고 파국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과거의 성공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으로 전락한다.
박근혜 정권의 비극도 역사에서 과거의 비극을 망각하고 성공경험만을 카피한 행동이 초래한 필연적 귀결이다. 비극으로 종말을 고한 박정희 정권에 대한 통체적인 역사적 판단과 교훈을 무시하고 초기의 개발독제에 의한 성공경험만 집중적으로 부각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했던 정치가들이 초래한 것이다. 디지털과 소통의 민주화가 대세로 굳어지는 시대에 개발독제의 성공경험이 역사진보의 시계를 꺼꾸로 돌린 것이다. 박근혜식 불통의 정치는 초반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이처럼 역사적 과거가 반복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비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주체적으로 창조해나가기 위함이다. 창조되지 않고 카피되는 역사는 필연적으로 비극을 반복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역사를 통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과거의 특정 성공경험이나 비극의 경험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가며 우리에게 카피를 강요하는 후보들을 경계해야할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창조해나갈 수 있는 통찰력이 있는 후보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