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신과 다른 점은 신은 완벽한 분이기 때문에 절대로 실수와 잘못을 하지 않는 반면 인간은 끊임없이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삶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세 가지 경우이다. 인간이 아니라 신이거나, 신인 것처럼 흉내를 내며 잘못을 감추고 있거나, 아니면 실수할 수 밖에 없는 그냥 인간임을 인정하고 실수를 기회로 삼아 학습하거나 셋 중에 하나이다. 인간의 학습원리는 세번째에서 해답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번째 범주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의 삶은 성장과 학습이 멈춰진 삶이다.
사람들이 성장하는 사람과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져 있는 사람의 차이는 이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성장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통해서만 학습한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반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의 흉내를 내가면서 자신이 한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감춘다. 둘째, 성장하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 차리기 전에 허심탄회하게 자복한다. 반면 성장이 멈춰진 사람들은 남들에 의해서 자신의 실수가 털려 나오는 순간까지 꽁꽁 감춘다. 셋째, 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의 원인을 분석해서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고 향후에는 비슷한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반면 성장이 멈춘 사람들은 실수를 통해서 학습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 주변으로 더 높은 벽을 쌓고 실수를 통해 태어난 자신의 감춰진 모습이자 기형아인 성인아이를 키운다.
오랫동안 실수를 통해서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감옥 속에 감춰놓은 성인 아이를 하나씩 키우고 산다. 이 성인아이는 가끔 술이 만취해서 필름이 끊어 졌을 때 감옥에서 탈출해서 난동을 부리지만 평상시에는 자신의 철저한 감시하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조차도 없는 추악한 모습으로 성장한 성인 아이가 자신의 감옥에서 커갈수록 자신은 남들에게 험악한 무기로 변해간다. 나와 주변과의 피드백이 끊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나이 많음과 내 직책이 무기냐고 나를 피해가며 자신들끼리 뒷담화를 주고 받지만 내가 왜 그런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다 자신 감옥속에 가둬논 성인아이 때문이다. 성인아이의 난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가면을 이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에게 성인아이가 있었음을 자복하고 이 성인 아이와 화해하고 이 아이를 구출해내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성인아이를 운명처럼 껴안고 죽음을 맞이한다. 불행한 일이다.
성인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그래서 자신이 남들에게 피해가 되는 무기로 변해가고 있다면 자신에게 성인아이가 있음을 자복하고 이 성인아이를 용서해주고 허그해 주는 것이 멈춰졌던 자신에 대한 성장의 물꼬를 다시 트는 지름길이다. 이 성인아이와의 화해를 통해 이 아이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성장은 영원히 멈춰선 것이다. 자신이 충분히 자신의 성인아이를 구할 정도로 성숙된 순간 우리는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자신의 성인아이를 만인에게 공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의 최고지도자, 정치가, 국회의원, 검찰, 법관, 신문기자, 낙마하는 장관후보, 대형교회 목사 등 사회적 리더를 자처하는 분들의 화려한 이면에 무섭게 기형화 된 성인아이의 모습을 목격하고 놀란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성인아이를 남탓으로 외재화 시켜 무기로 만들어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다.
결국 인간에게 실수가 없었다면 성장도 없다. 성장하여 존경받는 리더로 거듭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학습하는 죄인"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깨닫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