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협동(cooperation)과 협업(collaboration)을 구별하지 않고 쓰지만 인류역사를 바꿔놓은 모든 성공 프로젝트는 협동이 아니라 협업모형이다. 인류가 사회를 만들을 수 있었던 것도 밤이면 모닥불을 중심으로 서로 둥굴게 원을 그리고 둘러 앉아서 상대방의 등을 지켜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아인쉬타인의 이론 속에만 존재하던 블랙홀을 찾아낸 프로젝트도 세계각지의 흩어져 있던 천체 망원경을 블랙홀 탐색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의해서 동원해서 성공했다. 마을을 엮어서 나라를 세우는 것도 협업모형에 따른 것이며 화폐, 군대, 교회를 만들어 낸 것도 모두 협업모형이 성공한 결과이다. 실제 나로호에 참여했던 분들의 인터뷰 내용도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계가 아니라 모두가 주연이자 전문가로 협업했다고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협업과 협동의 차이는 중요한 일차적 상호작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협업조직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일차적 상호작용이 공동의 목적과 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각자의 전문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이 일차적 상호작용이다. 협업에서 참여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이차적 상호작용이다. 협업모형에서는 이차적 상호작용이 일차적 상호작용과 충돌이 생길 때 참여자간의 이차적 상호작용은 일차적 상호작용에 의해 다시 조율된다. 일차적 상호작용을 실현하기 위해 이차적 상호작용에서 문제가 된 맴버를 교체한다. 사람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이차적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이유가 목적을 중심으로 한 전문성의 상호작용인 일차적 상호작용을 실현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협동에서 1차적 상호작용은 모인 사람들이다. 협동이란 공동의 목적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효율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상호작용의 기제이다. 서로간 공동의 이해가 틀어질 때는 서로 모여서 협동할 이유가 없다. 예외적으로 이들 협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마음이 맞아서 공동의 목적을 구성하고 이 공동의 목적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발전 시킬 수 있어도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면 다시 원래 참여자와 참여자 사이의 공동의 이해를 중시하는 정치적 관계로 환원된다.
협업에서는 공동의 목적이라는 미래로 향하는 버스의 행선지를 정해놓고 누구를 승객으로 태울 것인지를 결정하지만 협동에서는 일단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먼저 버스에 태워놓고 이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협상해 버스의 행선지를 정하는 방식이다. 힘이 있는 누가 버스에 타고 있는지에 따라 행선지가 좌지우지된다. 버스이동 중 분란이 생겨 힘있는 사람이 버스에 내려지고 행선지가 바뀌기도 한다. 힘있는 운전자가 과거로 회귀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행선지를 정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협동이란 각자의 이해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각자가 소유한 여유자원을 이용해서 서로 돕는 행위를 의미한다. 협동을 움직이는 근원적 동기는 각자의 이해관심을 충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심을 총족시킬 수 없다면 자발적으로 나서서 상대를 도와줄 이유가 없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과 상관없이 상대를 돕는 행위는 자선이지 협동은 아니라고 믿는다.
협동의 본질은 자신의 이해관심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정치적 시장거래다. 내가 쌀을 많이 가지고 있고 상대가 채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여분의 쌀과 채소를 거래해서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태를 만들려는 욕심이 생길 것이다. 그냥 거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얼마의 쌀을 얼마의 채소로 바꿀 것인지 흥정을 해야 한다. 흥정이 깨진다면 자신의 욕구를 총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거래를 통해서 자신의 이해관심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쌀이나 채소의 가격을 부풀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결국 협동이라는 이름을 내걸지만 협동을 성립시키기 위한 흥정과정에 품질에 대해 속이는 일도 생기고 각종 연줄을 통한 정치가 개입한다. 협동을 실현시키기 위해 경험해야 하는 갈등과 불신과 정서적 소진이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반드시 써야 하는 거래비용이다. 협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흥정을 위한 정치와 거래비용이 소요된다.
한 조직이 비슷한 처지와 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면 이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돕는 협동행위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이 처지가 다르고 파워나 직책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이들은 각자의 힘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줄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결국 모든 협동 조직은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연줄의 위계적 네트워크로 전환된다. 협동은 조직을 연줄과 위계 중심의 정치조직으로 갈기갈기 찢어놓는 잘못된 조직원리이다. 협동은 필연적으로 조직을 파워와 연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내집단과 여기서 소외된 다수로 구성된 외집단으로 쪼개지게 만든다.
조직 내에서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이 서로 협동할 경우 당연히 힘 있는 사람은 조금 영향력을 행사해주는 댓가로 힘없는 사람에게 많은 다른 것을 요구할 것이다. 아니면 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 평소에 많은 것을 해주었을 개연성이 높다. 다수의 구성원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이해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인 협동의 메카니즘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대신 상대의 이해관심을 얼마나 들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성원들간 일련의 정치적 협상에서 합의가 성립되어야 한다. 조직은 정치적 협상의 시장으로 전락되고 결국 파워에 따라 구성원 각자 협동의 가격이 정해진다. 조직은 완벽한 정치적 협상의 시장으로 전락한다.
힘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누가 더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이런 협동의 불균형이 서열화된다. 힘없는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연스럽게 조직은 힘 있는 사람에게로 연줄이 이어져 라인과 사일로가 만들어진다. 힘께나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그마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해야 하는 집단은 철저히 외집단이 된다. 힘과 연줄이 없는 다수를 구성하는 외집단은 내집단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랍해 수직적 위계가 공고해진다.
협업이 앞에서 끌어주고 협업의 성공결과로 협동이 저절로 따라오게 만드는 조직이 최고의 조직이다.
협동보다 협업을 중요시하는 조직은 협업의 핵심인 평소 공동의 목적을 마음에 심어줄 수 있는지에 치중하고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에게 목적에 대한 스토리를 통해 협업할 것을 제안할 것이다. 협업으로 목적과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이해관심을 실현시키는 것보다 목적을 실현시켜서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파이가 더 크다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협상에 힘을 뺄 이유가 없다.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협업을 가동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성공확율이 높다. 성공하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이해도 충족되고 조직의 이해도 충족되는 성장체험을 하게 되면 이 협업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든 구성원들은 동지가 된다.
조직에서는 이런 협업을 통해 협동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조직 구성원간 신뢰와 화합의 기반을 만든다. 신뢰와 화합은 협동의 성공을 통해서도 만들질 수는 있어도 이때의 신뢰와 화합은 어디까지나 특정한 상대와의 관계 속에 갇혀 있는 내집단에서 구성원 간 신뢰와 화합일 뿐이다. 협업의 성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파트너십인 협동관계에는 협상을 위한 거래비용이 소모되지 않는다.
디지털 초지능 사회가 심화될수록 개별 맞춤형 서비스나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구성이 가능해져서 구성원들이 개별화되는 경향이 증폭된다. 이런 개인화 된 사람들이 구성하는 것이 분산사회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산사회의 국면에서 개인들을 엮어서 조직이라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협동이 아니라 협업의 기술이 필수적이된다. 공동의 목적을 기반으로 하는 협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서 구성원 간 신뢰와 화합을 기대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다.
나로호는 전형적인 협업모형이지만 대한민국을 이끄는 윤석렬호는 검찰의 인맥으로 구성한 대표적 협동모형이다. 이런 협동모형이 위계와 연줄에서 파생되는 필연적 집단사고를 극복하고 이들에게 외집단인 서민의 아픔을 혁신적으로 해결해서 국가의 미래를 창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중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