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시위현장에 참여하는 Zen 세대에게는 촛불이 아니라 응원봉이 대세다. 촛불이 40대 50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면 응원봉은 20대 민주화의 상징이 된 셈이다.
Zen
세대에게 응원봉이 어떻게 시위의 도구가 되었을까?
응원봉은 특정 팬덤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과의 연대를 표현하는 비표에 해당한다. 요즈음 응원봉에는 블루투스 기능까지 달려 있다. 블루투스를 이용해서 집단적 응집력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집단적 응집력을 이끌어낼 정도의 아이돌 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Zen들 마음을 삼아 이들이 덕후로 모실 정도의 철학이 존재해야 한다. 응원봉의 한계는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콘서트 장 이외 다른 장면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덕질을 위한 문화코드였다.
네트워크 분석에서 네트워크 필드에 응집되어 분출된 봉우리들을 구조적 동일성(Structural Equivalence)라고 부른다. 우리 연구팀(Lawler, Thye, Yoon)은 네트워크 장이 이런 구조적 동일성의 봉우리들을 형성하면 이 봉우리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연결하여 상판을 만들고 이 상판 작업을 통해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구조적 응집력(Structural Cohesion)이라고 명명하고 이들이 만드는 더 평평하고 기울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상의 지평을 연구해왔다. 네트워크가 융기해서 만들어진 산 봉우리와 산 봉우리를 거인의 어깨로 삼아 다시 서로를 연결하는 운동장을 만드는 현상이 구조적 응집력이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 만들어지는 인간 세상에서는 비일비재한 현상이다. 들뢰즈는 이런 현상을 주름펴기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마치 세계의 고수들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으면 고수와 고수는 결국 소통하게 되고 이들 사이 연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위한 플랫폼이 탄생하는 현상이 구조적 응집력이다.
사실 콘서트 현장에서 응원봉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연대를 표현하는 덕질의 도구였다. 콘서트 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팬들은 서로를 잘 모르는 파편화 된 개인들이다. 이들 개인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연결되어 집단적인 정체성과 개별적 자유를 응원봉을 통해 표현한다. 응원봉은 개인화로 불안감을 느끼던 Zen들에게는 자신들이 같은 아이돌을 응원하는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체험을 제공한다. 집단적으로 표현되는 칼 군무에 맞춰 응원봉을 신크로나이즈 하는 행동은 자신들이 고립된 개인이 아닌 강력한 집단이라는 집단적 효능감에 대한 체험이기도 하다.
이런 콘서트 장에서 팸덤을 형성하는 개인들이 모여 만든 집단적 효능감이라는 봉화가 민주화 시위 현장의 봉우리로 옮겨간 셈이다.
이들 Zen 세대가 자신의 응원봉을 들고 시위현장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이번 123 계엄 포고령이 이런 Zen 세대가 향유해온 개인의 자유와 집단적 효능감을 정치적 이유를 들어 통제하겠다는 경고로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포고령은 이들이 응원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지향하는 다양성과 자유에 대한 탄압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응원봉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이돌 그룹이 지향하고 있는 나름의 개인적 자유와 연대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즈음 아이돌 그룹 중 가장 강한 연대를 행사하고 있는 JYP 스트레이 키즈의 응원봉이 나침봉이다. 나침봉은 나침반을 상징한다. 나침반은 길을 잃었을 때 사용하는 도구다. 나침봉은 스트레이 키즈 구성원들 모두가 협업을 통해 음악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음악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광화문에 등장했던 촛불이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살려낸 자그마한 빛을 상징했다면 123 계엄에 등장한 나침봉은 길을 잃은 나라에 요구되는 강력한 불빛을 상징한다. 콘서트의 봉우리와 길 잃은 나라를 다시 찾는 시위 현장의 봉우리가 구조적 응집력으로 다시 연결되었다.
응원봉이 시위의 도구로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K POP의 힘이다. K POP이 담고 있는 자유, 연대, 다양성을 상징하는 응원봉이 과격함을 상징했던 전통적 민주화 운동을 축제와 평화의 장으로 만들었다. 응원봉의 등장은 어떤 일이든 목적에 가장 근접해서 표현되면 민주화 운동도 춤추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런 축제는 힘으로 법원을 초토화 시킨 젊은 폭도들의 행동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