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2 11:28
[N.Learning] 초뷰카시대 종업원 체험이란? 주인으로 세워지는 플랫폼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687  

초뷰카시대 종업원 체험이란?
주인으로 세워지는 플랫폼
2023년 1-2월호 HBR에 인시아드의 Mortensen교수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Edmonson 교수는 지금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시대에 종업원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종업원 체험의 본질은 경제적 인센티브나 복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경제적 인센티브와 복지는 공정성에 어굿나지 않게 제공해주는 것이 기본이고 대신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의해서 구성원들의 삶이 추동이 되어야 제대로 된 종업원 체험에 대한 가치제안이 가능함을 지적했다. 목적과 의미가 앞에서 드라이버로 이끌고 여기서 나는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서 보상과 복지로 공정하게 사후적으로 돌려주는 강화제(Reinforcement)로 사용하는 모형이다. 두 학자는 평소 심리적 안정지대(Psychological Safety Zone) 연구로 잘 알려진 분이다.
목적과 의미라는 드라이버와 복지와 인센티브라는 강화제 사이의 과정을 받쳐주는 두개의 매개 프로세스로 구성원을 전문가로서의 개발시켜주는 체험과 커뮤니티에 대한 체험을 제안했다.
일에 대한 목적과 사명이 앞에서 드라이버로 끌어주고 여기서 생긴 결과를 평가해서 공정하게 보상해서 구성원을 뒤에서 밀어주는 강화제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저서 <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끄는 기적, 샘앤파커스 2018년>에서 부터 본인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모형이다. 또한 <황금수도꼭지>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체험과 공동체라는 매개변수는 전문가의 놀이터라는 개념으로 본인이 기업의 문화조직설계에 조언을 줄 때 실제로 사용했던 모형이다.
최근에 출간된 <초뷰카시대 지속가능성의 실험실, 21세기 북스 2022>에서는 지금처럼 한 치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일상이 된 초뷰카시대에는 임금복지, 전문성개발, 공동체, 의미와 목적에서 달성한 평면적으로 종업원 체험의 수준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단순한 종업업 체험을 키우는 것을 넘어서 이것들을 엮어서 구성원이 온전한 주인으로 환대받는 체험을 제공할 때 기업이 가지고 있는 현재 지평과 위기의 문제를 뚫고 이것을 탈출해 더 높은 지속가능성의 지평을 만들 수 있음을 제안했다. 책에서는 이런 종업원의 주인됨에 대한 체험을 제공해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한 글로벌과 한국 기업사례를 발굴해서 제시했다.
<초뷰카시대 지속가능성의 실험실>에서 정의하는 종업원 체험은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해 종업원이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지고 이들의 주인됨을 통해 지금의 위기와 문제를 근원적이고 주체적으로 해결해 지속가능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초뷰카시대에서 제시하는 종업원 체험의 다음과 같다.
첫째 보상과 복지는 산출된 결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에 대한 체험이지 얼마나 많은 보상과 복지를 제공하는지의 체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동 생산성에 대한 혁신이 만들어지고 이 혁신을 통해 얻어진 결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체험이 종업원 체험의 시작이다. 결과가 산출되지도 못했는데 회사에 돈이 있다는 이유로 종업원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복지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은 경영자의 무능과 회사의 재원을 경영자가 배임하는 행위이지 종업원 체험은 아니다. 불만이 있을 때마다 복지와 인센티브로 해결하는 것은 종업원 체험을 갈가먹는 행위다.
둘째, 회사는 언제 망할지도 모르고 실제 망하지 않아도 직원들은 자신의 커리어 상에서 평균 5-6번은 이직한다. 연봉을 올리고 복지를 늘려 이직을 막는 것은 종업원 체험이 아니라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다. 이들에게 전문성을 신장시켜 회사에 빚을 지게하고 이를 통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제공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이직해도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노동시장에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고용개연성(Employability)를 높여주는 것이 종업원 체험이다. 고용개연성은 종업원이 내외부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제공한다. 고용개연성을 높여주는 종업원 체험을 제공하는 회사의 종업원은 역설적으로 덜 이직한다. 설사 이직하더라도 이 직장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평생 외부 파트너가 되어 회사에 진 빚을 갚는다.
셋째, 구성원들이 만드는 상승적 가치는 혼자가 아니라 대부분 동료와 협업을 통해 달성된다. 마음 놓고 협업을 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체험이 없다면 회사는 종업원들이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결국 종업원 체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회사로 전락한다. 공동체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연결하고 환대하고 연대해서 문제를 같이 푸는 결사체다. 공동체란 긍휼과 긍휼이 더 큰 공동의 목적을 위해 서로 협업으로 연대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종업원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긍휼감을 가지고 서로의 문제를 더 큰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돕는 조직의 분위기가 있을 때 종업원들은 공동체 체험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공동체 체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목적과 사명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 회사 일이 정의되고 계발(Enlight)되어질 때만 가능하다. 잘 알려진 석공의 이야기에서 구성원들이 회사와 자신들이 설정한 공동목적에 대한 약속을 협업을 통해 실현해서 성전을 완성하는 주체로 일으켜 세워질 때 종업원 체험은 완성된다.
초뷰카시대 종업원 체험은 회사가 피라미드를 더 정교하게 세우고 월급을 핑게로 종업원을 노예로 부리는 형태가 아니라 역피라마드를 세우고 이 역피라미드의 상단을 종업원이 전문가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주인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가의 놀이터로 설계해줄 때 완성된다. 전문가의 놀이터는 조직의 수평적 통합에 대한 최고의 체험을 제공한다. 종업원들은 이 놀이터 안에서 모두가 주인이 되어 자신들이 받아들인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업한다. 종업원들은 회사의 지평을 더 높은 곳으로 옮기는데 주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협업한다.
일은 목적에 근접해서 할 수록 놀이가 된다. 목적이 부재한 회사에서 종업원이 하는 일을 놀이로 만들 방법은 없다. 전문가의 놀이터에서 주인으로 대접받아가며 회사에 진 빚도 갚고 한 발 더 나가 전문성을 신장해 자신의 고용개연성도 높혀가며 자신의 미래도 설계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종업원 체험의 본질이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초뷰카시대 새로운 지평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협업의 주체로 세워지지 못한다면종업원 체험이 제공되는 회사는 아니다.
이런 온전한 주인됨이라는 종업원 체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회사는 종업원 체험을 다시 복지와 인센티브로 환원시켜 초뷰카시대와는 거리가 먼 현금으로 경영의 책무를 배임하는 토굴기업으로 전락한다. 노동생산성은 증가하지 않는 문제를 복지와 인센티브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고 복지와 인센티브를 종업원 체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경영하는 기업의 종업원들은 종업원 체험을 제공받지 못해 불만이 생기면 가지고 있던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종업원과 경영자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불만이 생길 때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계산기를 꺼내 두르리는 습관을 가진 회사에게 종업원 체험을 기반으로 한 미래가 있을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세계 어떤 민족과 비교해도 한국사람만큼 주인으로 세워지는 것을 중시하는 민족은 없다. 온전하게 주인됨으로 세워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서이자 에너지다.
지금과 같은 L불경기와 디지털이 이끄는 초뷰카 시대 성공의 개념은 남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서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남들의 온전하게 성공시키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일어서게 만드는 일이다. 목적에 대한 협업이 가능한 플랫폼까지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주인으로 일어서게 만든다면 아마도 초뷰카 시대 가장 큰 성공을 누리는 사람일 것이다. 플랫폼까지 만들지는 못해도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들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 큰 성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 성공자나 일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조건이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의 나침반을 발견해 자신을 목적과 긍휼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자신에 대한 체험이다.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지 못한 사람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플랫폼을 세우거나 자신도 힘들어 누워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평생 노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주인으로 살려내는 근원적 변화과정이 진정한 성공자이 공유하는 영웅의 여정이다. 세상, 사회, 나라, 회사를 구하는 영웅도 있지만 이들이 모두 경험했던 최초의 영웅담은 자신을 노예상태에서 해방해 구해낸 경험이다. 자신을 구해내지 못한 사람이 남을 구해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고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구해내는 여정이 진정한 영웅여정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주인으로 세워지고 주인들이 세운 플랫폼에서 공진화하는 목적을 위해 경업낙군으로 협업하는 상태가 우리가 열망하는 온전한 민주화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가 자꾸 퇴행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정치적 민주화의 토굴에 빠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됨에 대한 체험인 온전한 민주화의 방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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