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최인훈씨도 별세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대학시절 <광장>과 <회색인>을 열독했던 한 사람으로 이 두 분이 같은 시점을 두고 세상을 하직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돌이켜보면 노회찬 의원은 <광장>의 이명준이고 <회색인>의 독고준이었다. 이명준은 북한의 선동선전 광장정치와 남한의 밀실정치에 사이에서 고민하다 전쟁포로에서 석방되자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되는 제 삼세계 국가인 인도로 망명을 결심한다. 망명지로 향해가는 배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날아 다니는 두 마리 갈매기를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차라리 바다와 갈매기가 밀실과 광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광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고준은 4.19 혁명이후 모든 지식인들이 횐색과 검정색의 흑백논리로 사람들을 재단하고 편을 가르는 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영원히 경계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지식인이다. 흑백논리의 감옥은 전후 우리를 옥죄왔던 이념의 감옥보다 더 지독한 감옥이다. 독고준은 세상이 만들어 강요해온 이원론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이 구축하고,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세상만을 진실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세상을 찾고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신을 훈련시켰다. 혼돈의 시대에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아나선 진성 지식인이었다.

한 사람은 소설에서 한 사람은 정치에서 같은 이상을 꿈꾸던 두 개의 큰 별이 같은 날 별똥별로 떨어진 것이다.

노회찬의원은 노동운동이라는 밀실도 경험하고 국회라는 광장도 경험한 이명준이었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좌우 이념적 정쟁으로 소모적 싸움을 펼치고 있을 때에도 단단한 정치현실을 풍자해가며 제 삼의 당에서 자신만의 정치세계를 꿈꾸었던 독고준이었다. 노회찬 의원이 꿈꾸던 진실의 광장에 촛불의 여명이 보이는 순간 드루킹이라는 세이렌이 나타나 돌을 던져 노의원을 쳐죽인 것이다. 우리는 세이렌이 돌을 던져 노의원을 죽이는 광장에 방관자로 서 있었다.

방관자 역할에 자족했던 우리 스스로에게 분노해야 할 시간이다. 불의와 부조리에 대해 방관했던 것에 분노하지 않고 어떻게 민주주의가 바로 설 것을 기대한단 말인가? 고 노회찬 의원이 죽음으로 설정한 정치의 윤리기준이 향후 한국정치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우리는 분노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활비 등을 꼼꼼히 챙겨가며 정치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 민주주의를 훼손해온 정치인들에게 고 노회찬 의원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도 언제던지 분노가 폭발하는 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정의는 말장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