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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新키워드 ‘애자일(Agile)’ 인력·자원 신속히 재배분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라
기사입력2018.11.16 오전 9:23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한국법인)는 올해 4월 본사 직원 500명 중 200명 이상을 소규모 애자일 그룹 체제로 재편했다. 업무 성격에 따라 수직적으로 구성한 직급체계를 허물어버렸다. 대신 3개 트라이브(Tribe·부족)와 그 산하에 9명으로 구성한 18개 스쿼드(Squad·분대) 팀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스쿼드’ 형태의 소그룹에 업무 전권을 주고 성과를 내도록 만든 프로젝트팀 방식이다.

과거에는 한 부서가 상품을 개발하면 다른 부서가 이를 차례로 검토하고, 오류를 발견하면 초기 단계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개편 이후 여러 관계 부서가 개발 초기부터 참여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게 됐다. 효과는 탁월했다. 조직 개편 이후 2개월가량 걸리던 신상품 개발 기간이 3~4주일로 확 줄었다. 신상품 개발 주기가 짧아지자 1인당 생산성은 늘어났고 직원 만족도가 높아졌다.

오렌지라이프는 ‘애자일(Agile)’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오렌지라이프 측은 “소규모 조직으로 나뉘어 과거에 비해 일처리 속도가 빨라진 것은 물론 각자 다른 부서에 속해 있던 사람들과 한 팀이 된 만큼 업무를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 직원 개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IT 업계에서 유래한 애자일

▷완전무결? 고치면서 수정·보완

최근 경영학계는 물론 재계에서 애자일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애자일은 ‘날렵한’ ‘민첩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다.

이 용어는 2000년대 초반 IT 업계에서 처음 등장했다. 1990년대만 해도 많은 개발자가 오랜 기간 동안 한곳에 모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예를 들어 항공기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가 한곳에 모여 일했다. 표준화한 시스템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방식은 대형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적합했다. 하지만 소규모 프로젝트 진행은 더디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2001년 변화의 움직임이 싹텄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17명이 ‘애자일 연합’을 결성해 좀 더 빠르고 유연한 개발 방식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상호작용’ ‘소프트웨어 중시’ ‘고객과의 협력’ ‘변화 대응’ 등을 담은 애자일 선언이 이때 발표됐다. 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개발 주기나 소프트웨어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게 골자다. 고객에게 좀 더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고 피드백에 민첩하게 반응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실리콘밸리 기업이 애자일 방식으로 조직문화 자체를 바꿨다. 전통 비즈니스에서는 완전무결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 목적이었다. 반면 디지털 비즈니스에서는 애자일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각종 오류(버그) 수정을 통한 업데이트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도중에 버그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대기업 개발자라면 ‘버그 발견’ 리포트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한다. 이후 임원 결재를 받은 후 수정한다. 버그를 고치는 일을 개발팀이 할지, 아니면 운영팀이 할지 경영진 지시를 받는다. 애자일 방식은 다르다. 개발자가 버그를 발견하는 즉시 수정한다. 상부 보고는 필요 없다. 버그를 개선했다는 정도만 가볍게 주석을 달아놓으면 끝이다.

구글은 서비스 개발뿐 아니라 조직 운영 전반에 애자일을 도입했다. 구글에서는 개발자 1만5000명이 매일 7500만개 테스트를 진행하고, 매달 50% 이상의 코드가 개선·변경된다. 5~10명 규모 애자일 단위 팀이 4000개 이상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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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조직 특징

▷수평적이고 빠른 의사결정 핵심

애자일 전략은 빠른 속도로 재계로 전파됐다. 금융, 유통, 텔레콤·미디어 3개 산업이 먼저 수용했고 이후 화학·에너지, 자동차 산업으로 퍼졌다.

애자일 전략 전문가인 강혜진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는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는 정도가 심한 산업일수록 위기 대처 차원에서 애자일 전환이 빠르다”며 “반대로 가스전 개발같이 기술 난이도가 높고, 이에 따른 리스크가 큰 산업은 애자일 전략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애자일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부서 간 업무 협업 효율성을 낮추는 관리자층을 과감히 없앤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하면 소규모 팀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테스트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렌지라이프는 관리자층을 없애 과거 연간 5~6회에 그쳤던 신규 소프트웨어 개발 주기를 3~4주로 바짝 당겼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빨리 내는 동시에 수정·보완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속도’전에 맞춰 상품 개발과 IT본부를 통합해 의사결정 단계를 줄였다. 공식회의를 최소화하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비공식적으로 논의하도록 팀 회의 방식을 바꿨다.

“새로운 업무 방식을 뒷받침하려면 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 서로 다른 기능 부서, 경영위원회, 관리자층에 변화가 없다면 사일로(Silo·부서 이기주의)가 발생하고 보고·승인 과정에서 다단계 관료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조직 역량을 낮춘다.” (강혜진 파트너)

또 다른 애자일 조직 특징은 팀별 성과 목표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성과관리 주기를 짧게 줄인다는 데 있다. 구글은 각 팀에 3개월 단위로 업무 목적과 성과 목표를 적어내게 한다. 이를 조직 전체에 공개하고 공유한 뒤 다른 팀과 방향을 맞춰 조율해나간다. 진행 성과는 2~3주 단위로 검토하고, 3개월마다 전체 성과에 따라 인력과 자원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재배분한다.

부서별로 애자일 전환이 시급한 정도는 차이가 있다. 고객 수요를 빨리 파악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마케팅·상품 개발 조직이 애자일 전환 1순위다. 엔지니어링, 영업, 재무, 인사 등 지원부서도 애자일 전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반면 원천기술 개발, 감사(컴플라이언스) 등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는 애자일 적용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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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도입한 국내 기업

▷오렌지라이프 등 금융업계 앞장

애자일 체제 도입에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단연 금융업계다. 금융 산업에 IT 기술이 접목되며 시장이 변하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기존 체제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 요구에 적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애자일 도입을 서두르는 기업이 많다. KB금융그룹은 지난해부터 그룹사에 애자일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움직이는 소규모 조직 ‘에이스(ACE, Agile·Centric·Efficient)’를 운영 중이다. 디지털금융그룹과 개인고객그룹, 경영기획그룹 등 3개 그룹 내 11개 에이스팀이 있다. 각 에이스팀은 1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기존에 비해 팀 규모가 작아졌고 의사결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아직 도입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성과를 낸 에이스팀이 있다. 스타CMS팀이 그 주인공이다.

스타CMS팀이 올해 6월 선보인 기업 자금관리 플랫폼 ‘스타자금관리시스템(CMS)’은 서비스 시작 2개월 만에 기업고객을 1만명 넘게 확보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선보인 모바일뱅킹 플랫폼 ‘리브똑똑’도 에이스팀 작품이다. 리브똑똑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7주(35영업일). 여타 개발 프로젝트에 비해 3개월가량 시간을 단축했다.

KB금융그룹 계열사인 KB국민카드는 올해 초 ‘스웨그(SWAG·Smart Work

ing Agile Group)’라는 이름을 단 애자일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스웨그팀은 독립된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고 조직 혁신과 시스템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각 본부장이 상황에 따라 조직을 재설계할 수 있는 ‘자율조직제’도 도입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자율조직제 덕분에 주요 현안과 전략에 맞게 조직을 재구성할 수 있어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조직을 개편하며 핀테크, 블록체인 등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미래금융그룹 내에 ‘셀(cell)’ 조직을 만들었다. 셀 조직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운영된다.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여러 셀을 합치거나 분리하는 등 조직 구성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

현대카드도 올해 초 애자일을 키워드로 내걸고 조직을 개편했다. 기존 ‘본부-부본부-실-팀-센터’ 다섯 단계로 구성된 조직체계를 ‘본부-실-팀’ 세 단계로 간소화했다. 이 과정에서 약 50개 부본부와 센터가 폐지됐다. 부본부는 본부로 통합됐고 센터에서 맡았던 역할은 팀이 수행하게 됐다. 실장 권한도 강화했다. 과거에는 팀을 재편하려면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이제는 실장이 자유롭게 팀을 새로 만들거나 폐지할 수 있다. 인력 구성과 예산 분배 등도 실장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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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라이프는 올해 4월 애자일 조직을 도입했다. 본사 직원 500명 중 200명 이상을 소규모 그룹 체제로 재편했다. <오렌지라이프 제공>
▶금융업계 外 도입 기업

▷삼성SDS·카카오 효과 ‘톡톡’

금융 외 다른 산업에서도 애자일 방식을 채택한 기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SDS가 첫손에 꼽힌다. 일찌감치 2007년부터 소규모 프로젝트에 애자일 방식을 활용해왔다. 2015년에는 애자일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애자일코어팀(ACT·Agile core team)을 만들었다. 당시 20명으로 시작한 ACT는 현재 인원이 75명으로 늘어났다.

ACT 구성원들은 사내 프로젝트에 파견돼 애자일 업무 방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최소한의 조건만 설정이 되면 우선 베타 버전을 만들고 고객이 사용해보게 한 뒤 피드백을 반영해 새로운 버전을 만드는 등 ‘일단 해보고 개선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간다.

명함관리 앱 ‘리멤버’를 만든 드라마앤컴퍼니도 애자일 방식을 잘 활용하는 사례다. 드라마앤컴퍼니는 2013년 창업 때부터 애자일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 드라마앤컴퍼니 관계자는 “투자금이 바닥나기 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추가 투자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애자일 체제 도입이 필연적이었다”고 전

했다. 리멤버는 이용자가 명함을 사진으로 찍으면 타이피스트 500여명이 명함 정보를 앱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을 활용한 기존 명함관리 앱과 다르게 사람이 직접 입력하는 방식이라 정확도가 높다. 창업 초기 드라마앤컴퍼니는 수기 입력 방식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한된 인원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클로즈드 베타 테스트(CBT·비공개 시범운영)를 빠르게 진행했다. 이후 피드백을 반영해 앱을 수정한 뒤 오픈베타(공개 시범운영)로 범위를 확대했다. 베타 서비스를 마친 후에는 작고 단순한 목표를 세워 2주 내에 달성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태스크포스(TF) 체제를 도입했다. 회사 인력을 크게 기존 명함관리 사업을 이끌어가는 TF와 신사업을 하는 TF 두 개로 나누는 방식이다. 각 TF는 세부 과제를 추진하는 소규모 그룹으로 다시 나뉜다. 하반기부터는 업무 진행 속도를 한층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 두 TF를 해체하고 더 세부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TF를 만드는 방식으로 바꿨다. 각 TF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운영된다.

목표를 이뤄낸 후에는 CEO와 TF 리더가 상의해 TF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TF가 해체되면 향후 사업·제품 로드맵을 결정하는 전략위원회에서 새로운 과제를 정해 새 TF를 다시 만든다.

카카오도 애자일 문화를 보유한 기업이다. 지난해 카카오가 선보인 인공지능(AI) 스피커 ‘카카오미니’는 개발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다. 경쟁사에 비해 4배가량 빠른 속도다. 카카오미니는 카카오가 처음으로 선보인 하드웨어 제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해당 제품은 지난해 10월 시장에 나온 후 9개월 만에 20만대가 완판됐다.

카카오가 이처럼 빠르게 우수한 제품을 선보인 비결은 애자일이다. 카카오는 조직 운영 방식이 유연하기로 정평이 났다.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조직 개편이 이뤄진다. 스피커를 만들 때에도 개발 방향이 정해지자마자 TF를 만들었다. 부서 간 협조를 구하기 위해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을 필요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속도가 단축됐다.

▶주의할 점

▷만병통치약 맹신 금물…권한 위임 필수

애자일 조직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애자일 조직은 팀에게 ‘어떻게(How)’에 대해 전격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게 핵심이다. 권한을 위임한 후에 경영진이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못하거나, 중간에 세세한 지시를 내리고, 또 지시를 번복하는 경우 실패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경영진이 조직에 끼치는 영향이 큰 조직문화에서 애자일 전환의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애자일 체제를 도입할 때 충분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오랜 기간 유지해오던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인 만큼 성급히 추진해서는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사전에 충분히 조사하고 준비하는 것은 물론 도입 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오렌지라이프는 애자일 조직을 도입하기에 앞서 6개월가량 준비 기간을 거쳤다. 해당 기간 동안 오렌지라이프는 컨설팅 기업에 의뢰해 기존 업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애자일 기법이 효과가 있을지 등을 분석했다. 네덜란드 ING은행을 비롯해 애자일 시스템 활용으로 효과를 본 기업을 방문해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인 오렌지라이프에 맞는 애자일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애자일 체제를 도입한 후에도 애자일이 어떤 방식인지, 각 부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업무나 조직 특성에 따라 애자일 시스템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애자일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고 해서 무리해 도입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패니시 프라남 인시아드 교수는 “애자일 방식은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애자일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업무도 많다”고 전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3호 (2018.11.14~11.2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