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이 연이은 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결국 회사의 존망자체가 문제가 되는 상태에 도달했다. 왜 이런 상태에 도달했을까? 내가 진단하는 파국의 원인은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서 앞만보고 달리는 무분별한 경영혁신기법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 건은 회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존재목적이 없는 회사가 생존을 위해 경영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경영기법에 올인할 때 어떤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아이파크를 브랜드로 운용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도 최근 수년간 애자일 경영을 경영혁신전략으로 삼고 여기에 회사의 사활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자일에 제대로 집중하기 위해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지난 5년간 무려 네 차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실제 애자일 도입후 현대 산업개발의 단기 영업이익은 극대화되었다. 2018년 3179억원, 2019년 5514억원, 2020년 5857억원을 기록했다. 직원 수는 계속 감소해서 2019년 1769명에서 2020년 1591명으로 줄었다. 평균급여액도 업계에 비해 현저히 낮다. 효율성과 신속에 방점을 두고 시장에서 소요 인력을 소싱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인력도 정직원 비율이 20%, 계약직이 80%다.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은 업계초고다.

기업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상실하고 이윤만을 목표로 추구할 때 기업의 모든 경영 활동은 부분 최적화를 통해 쇠퇴하기 시작한다. 경영을 통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경우 결국 구성원들은 자신 기업의 목적함수는 이윤추구라고 가정한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경영의 전체 최적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회사에서는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제시되었던 것들이 구성원들에는 시시각각 목적으로 전치되어 생존을 위해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설정한 목적은 홈페이지에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가짜 목적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이 플라스틱 목적을 무시해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고 파국을 향해 달리는 설국열차를 운행하는 셈이다.

요즈음 회사들이 도입하는 KPI, OKRs, 인게이지먼트, GWP, 애자일, 다양성, 워라벨, 52시간 근무제도, DT, 님으로 부르는 호칭, 다 마찬가지다. 이들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목적이 거세당한 회사가 이런 수단적 도구에 집중하다보면 이것이 조직의 목적인 것처럼 전치된다. 직원들에게 KPI 이나 OKR이 할당되면 이것은 회사의 성과를 달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생계와 직접 연관된 목적으로 전치된다.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회사의 목표를 침해하는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성과치를 채운다. 성과치에 몰리면 회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구성원들은 몰래 이 거위의 배를 갈라서라도 자신의 성과를 채워넣는다.

애자일 경영도 마찬가지다. 애자일의 본질은 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에 지도가 바뀌어 길을 잃어버리는 회사들이 자신들이 길 잃어버린 지점을 찾아내 지도를 최대한 빨리 복원해내는 것이다. 나침반에 해당하는 목적을 잃은 회사가 애자일 경영에 치중하다보면 순간에 집착해서 잘못된 지도를 빨리 그려내는 효율성의 함정에 빠져 결국 자신의 발에 걸려 무너진다.

수도 없이 많은 혁신적 실험들이 다 실패하는 이유는 회사가 이들 실험을 달성해서 축적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에서는 회사의 정신모형이 구성원들에게 운동장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런 회사에서 일어나는 혁신은 모두 밑빠진 독이 되어 소진된다.

혁신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기 전에 우리 회사는 이런 혁신을 담을 제대로 된 목적함수가 있는지를 먼저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목적함수를 대부분 구성원들이 믿고 있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종업원이 개인적 목적을 위해 조직의 목적을 희생하는 일이 생기고 있지는 않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경영을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 전체 최적화하는 목적이 없이 경영혁신만 믿고 부분 최적화를 위해 내달리는 대부분의 열차는 파국이 정해진 브레이크 없는 설국열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