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소설을 보면 두 커플이 사랑하는 장면이 줄거리로 연출된다. 한 커플은 안나와 브론스키이고 다른 한 커플은 키티와 레빈이다. 안나는 유부녀이고 브론스키는 백작이자 장교이다. 이들은 기차에서 처음 만나서 첫눈에 반해 열열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불륜의 사랑이다. 착한 처녀 키티와 시골의 지주인 레빈의 사랑은 꼬인 사랑이다. 레빈은 키티를 사랑하지만 키티는 브론스키를 사랑한다. 두 커플의 사랑은 모두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지만 전혀 다른 결말을 내린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영원 불멸의 사랑을 꿈꾼다. 결국 문제가 얽히고 설혀 영원한 사랑이 지켜지지 않을 것을 감지한 안나는 영원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으로 사랑을 끝낸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가 가진 장점과 육체적 매력에 끌려 한 눈에 반한 사랑이다. 반면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상대가 가진 장점과 매력에 대한 편애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 긍휼의 사랑이다. 처음에는 레빈의 키티에 대한 일방적 사랑으로 시작되었지만 키티가 레빈의 사랑의 아픔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레빈을 사랑하게 됨으로 둘의 불안정하게 시작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성숙시킨다.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톨스토이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경우처럼 상대에 대한 장점과 매력만을 편애한 사랑은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상대의 장점만을 편애하는 불꽃튀는 사랑은 유예기간을 지나 콩깍지가 벗겨지면 자신들이 콩깍지 사랑은 영구불멸의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매력을 편애하는 사랑의 사건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신은 이기적인 남녀가 사랑을 하여 가족을 만들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호르몬으로 콩깍지를 쒸워 놓는 작전을 구사해왔다. 그간 연구들에 따르면 호르몬에 의해 콩깍지가 쒸워지는 기간은 3년을 넘지 않는다. 3년이 지나 콩깍지가 벗겨진 후에도 콩깍지가 쒸워져 사랑했던 3년을 잊지 못한다면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개념은 콩깍지가 벗겨지는 3년이 지나서도 가족 안에 묶어두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콩깍지가 벗겨져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알 때마다 이혼을 한다면 가족은 모두 해체되고 사회는 붕괴의 수준을 밟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사랑했다면 영원한 사랑을 해야하는 것처럼 교육시켰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3년의 기간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유예기간인 것이다. 이 기간동안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이들의 사랑은 세상의 조그만 바람에도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나간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는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심리적 울타리가 마련되고 이것을 기반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더 성장하고 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운명의 파트너 관계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불완전한 반쪽으로 존재하는 서로가 상대 때문에 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나머지 반쪽을 완성하는 변화의 과정이다.

사랑은 상대의 좋은 장점만을 사랑하는 사랑의 편애가 아니라 상대가 가진 아픔조차도 사랑해주는 긍휼에 기반할 때 온전한 사랑으로 성숙된다. 긍휼의 씨앗으로 길러낸 사랑만이 온전한 사랑이다.

상대의 장점이나 미모를 사랑한 사람들은 사랑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장점과 미모에 실증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상황이나 아이 때문에 헤여지지도 못한다. 사랑이 사라진 관계는 권력관계로 전환된다. 사랑의 유예기간에 아무리 불꽃튀기는 사랑을 했어도 예외는 아니다. 에리 프롬이 사랑의 기교 (Arts of Love)에서 예측한대로 존재론적 관계가 파괴되고 상대를 내가 마음대로 소유하고 도구처럼 부릴 수 있는 개념으로 사랑이 제도화된다.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는 바로 제도화된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제도화되어 권력관계로 진화하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도구취급하는 각종 갑질이 정당화된다. 상대가 자신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에 대한 경제적이거나 심리적 의존성를 심화시키고 이 의존성을 이용해서 상대에게 파워와 착취를 행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온전한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상대에 대한 매력과 상대에 대한긍휼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자신들만의 사랑의 태피스트리를 만들 때 온전한 사랑의 내러티브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고통을 인정하고 상대 때문에 고통을 이겨내는 성장을 체험하는 사람들만이 죽는 순간까지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쟁취한다는 것이다. 초기에 불꽃 튀는 사랑에서 경험한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을 기대하는 불변의 사랑은 비극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에게 주어진 반쪽으로 나머지 반쪽을 찾아 서로를 완성하는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다. 자신이 반쪽을 찾는 것만큼 찾은 반쪽으로 자신을 완성시키는 변화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천생연분이란 상대의 매력도 사랑하지만 상대가 가진 아픔도 사랑하는 균형된 사랑의 미학을 아는 파트너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로 들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You complete me.

I will complete you.